‘서퍼(surfer)들의 성지, 부산 송정해수욕장’, ‘뉴트로 성지로 떠오른 대전 소제동’, ‘호국의 성지 이끈 55일간의 치열한 다부동 전투’ 등 요즘 부쩍 ‘성지(holy place·聖地)’를 제목으로 붙인 기사들이 많아졌다.

이런 기사들을 읽어보면 대체로 ‘제목에 낚였다’는 씁쓸함이 들곤 하는데, <태권도원>을 갈 때마다 무주 초입에 큼지막하게 세워져 있는 ‘태권도 성지 무주’ 이정표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다소 거칠게 따져보자. 과연 무주는 태권도 성지인가? 성지의 자격과 여건을 갖추고 이런 슬로건을 내걸고 있는 것인가?

# 무주는 태권도 성지의 자격을 갖췄나?

‘성지(holy place·聖地)’는 종교·신앙·전승에 의해서 신성시되는 일정한 지역을 말한다. 산과 숲, 샘 등 숭배와 예배의 대상이 되는 자연경관이 성자나 영웅과 일체가 되어 성지 공간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예루살렘과 로마의 바티칸궁전, 잉글랜드의 캔터베리대성당, 스페인 몬세라트수도권 등이 대표적인 성지이다. 우리나라에도 솔뫼성지, 절두산순교성지 등이 있다. 이런 곳은 숭배와 예배의 공간이다.

물론 시대 흐름과 변화에 따라 고전적인 성지 개념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그 곳이 성스러운 인물과 신앙 및 전승의 상징 공간이면 폭넓게 ‘성지’라고 해도 된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아 인기 있는 장소, 즉 ‘핫 플레이스(hot place)’를 성지라고 해서는 안 된다. 또 보편타당한 상징성과 고유성을 부여하지 않은 채 특정 시설과 공간을 조성해 놓고 성지라고 호도해서도 안 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무주는 태권도성지가 아니다. 무주는 태권도 기원과 유래와 그 맥을 같이 하는 명징한 사료(史料)가 없고, 태권도 현대사와 관련된 질곡의 숨결과 태권도 문화가 짙게 남아있는 곳도 아니다.

이뿐인가. 태권도와 관련된 숭배와 예배의 공간도 아니고, 태권도를 둘러싼 인문학적 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이 풍부한 곳도 아니다. 그렇다고 국내외 태권도인들과 일반인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도 아니지 않은가. 좀 거칠게 말해 대회 참가자와 교육 참가자 등 선택권이 없는 방문객들을 제외하면 연간 10만 명도 태권도원에 가지 않는다.

태권도진흥재단 홈페이지

2014년 무주 설천면에 <태권도원>이 개원했다는 사실을 토대로 ‘무주=태권도 성지’라고 홍보하는 것은 억지 춘향 격이다.

그리고 <태권도원>이 태권도 성지의 기능과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보는가. 태권도원을 관리 운영하고 있는 태권도진흥재단(정부 공공기관)은 홈페이지에 ‘전통과 미래가 공존하는 태권도문화 교류의 중심’을 내걸고 세계태권도성지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비전을 발표했지만 실제성이 떨어진다.

# 태권도 성지 ‘소프트 파워’로 승부해야

이 글은 태권도진흥재단의 기능과 임직원들의 노력을 내려 깎으려는 내용이 아니다. 그동안 태권도 진흥과 보존을 위한 각종 지원사업과 태권도 산업 육성 등 주어진 여건에서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올해로 개원 6년이 됐지만 태권도원 본래 조성의 취지를 생각하면 여전히 <태권도원>은 깊은 울림을 주지 못하고 있다. 여러 정책과 노력에도 태권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현실에서 인공적인 시설물을 설치하고 정부 정책을 대행한다고 해서 태권도 성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전통성·역사성·상징성이 부족하고, 그것을 채울만한 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이 빈약한데 어떻게 태권도 성지를 운운할 수 있겠는가.

다행스러운 것은 올해 안에 <태권도원>에 태권전과 명인관 등 ‘상징지구’가 조성되고, 무주군이 ‘태권마을’을 조성한다고 하니 기대감을 갖게 한다. 내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발주에 들어간 ‘태권마을’은 5만 3563㎡ 규모에 태권도 수련생 양성과 건강, 힐링, 체험 등 특화공간으로 조성할 예정이다.

무주 초입에 세워져 있는 ‘태권도 성지 무주’ 홍보 간판을 보고 콧방귀를 뀌지 않는 날이 언제일지 궁금하다. 결국은 ‘소프트 파워(soft power)’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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