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이교윤이 펴낸 '태수도교본'(왼쪽)과 1966년 육군본부가 펴낸 '태권도'

*1961년 9월 대한태수도협회 창설

1961년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포고령 제6호에 따라 사회단체 재등록이 시행되자 문교부는 유사단체 통합을 서둘렀다. 문교부는 1961년 7월 12일 대한수박도회, 대한태권도회·공수도 창무관·공수도 송무관·강덕원 무도회·한무관 중앙공수도장 등의 대표를 소집시켜 통합회의를 수차례 주선했다.

하지만 각 관의 이해관계가 얽혀 통합 과정이 순조롭지 않자 지도관 이종우의 건의로 자율적인 기간에 통합하기로 하고, 그 결과를 문교부에 보고하기로 했다. 당시 지도관장은 윤쾌병이었기 때문에 이종우는 회의에 참석할 자격이 없었지만 각 관에 이해를 구해 참관자로 참석했다.

1961년 9월 19일 한국체육관에서 열린 통합회의는 송무관 관장 노병직이 주재했다. 핵심은 협회 명칭을 정하는 것이었다. 1955년 최홍희는 부관이었던 남태희의 도움을 받아 ‘태권도(跆拳道)’를 작명하고 세상에 발표했지만, 청도관과 오도관을 제외한 나머지 민간도장은 공수도·당수도·수박도·화수도·권법 등을 제각각 사용했다.

이날 회의에서 남태희는 “1959년 각 관의 대표들이 회합(최홍희 주도로 대한태권도협회를 창설할 때)할 당시, 만장일치로 ‘태권도’로 한 적이 있으니 태권도로 할 것을 동의한다”고 말했다.

이에 엄운규가 찬성했으나 윤쾌병은 “당시 문교부에서 결정했다고 해서 태권도가 된 것이지 만장일치로 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공수도를 고수하겠다”며 반대했다.

이 말에 노병직과 이남석 등이 동의했다. 하지만 청도관 출신들이 동조하지 않자 윤쾌병은 태권도의 ‘태’자와 공수도의 ‘수’자를 따서 ‘태수도(跆手道)’로 할 것을 개의했다. 결국 ‘태수도’를 표결에 부쳐 6표 중 찬성 4표, 기권 2표로 협회 명칭이 ‘대한태수도협회’로 가결됐다.

*최홍희 “태수도는 친일망국노 정신”

당시 최홍희는 ‘태수도’ 명칭에 불만이 많았다. 최홍희의 심경을 보자.

“4.19학생혁명과 5.16군사쿠데타로 인한 흐트러진 태권도계를 바로 잡는 것이 내게는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었다. (…) “무도의 성질상 ‘태’자는 꼭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하고 물었더니 이종우가 “‘태’는 좋습니다”고 하기에 나는 “태권도를 반대하는 둘을 이해시킬 목적으로 그러면 ‘권’자가 문제되는 모양이구만. 사실상 ‘권’이나 ‘수’는 비슷하지만”하고 ‘권’자를 써야 할 이유를 설명하려는 순간 이남석이 뛰어들어 “그거 참 태권도와 공수도가 합쳤다는 의미에서 ‘태수도’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하며 재빨리 건의했다 (…) 엄운규는 무엇에 매수되었는지 혹은 이종우의 술수에 말려들었는지 하루 사이에 ‘태수도’에 동의했다.” (최홍희(1998). 태권도와 나 2, 사람다움. 15쪽.)

최홍희는 통합 명칭을 놓고 고심하고 있는 이들에게 “수(手)는 권(拳)의 아들이라 할 수 있으니 기왕이면 아버지가 되어야지 스스로 아들 노릇할 것 없지 않은가”라며 설득했지만 협회 명칭은 대한태수도협회로 결정됐다. 최홍희는 “태수도가 무의미한 이름인데도 부득이 이를 우겨대는 이유는 그들 머리 속에 아직도 친일망국노 정신이 꽉 박혀있기 때문이다”고 개탄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창설된 대한태수도협회는 1962년 12월 대한체육회 승인을 얻어 이듬해 2월 축구, 야구, 수영 등에 이어 28번째로 정식 경기가맹단체로 발족했다. 그 후 집행부를 개편했다.

최홍희는 1963년 예편한 후 말레이시아 대사가 됐다. 그는 대사직을 수행하면서도 태권도에 대한 애정은 여전했다. 1964년 태권도가 가라테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천지틀과 단군틀 등 20개의 틀을 만들어 오도관장 우종림에게 보냈다.

최홍희는 65년 1월, 한-일 국교 정상화가 막바지에 이를 즈음, 말레이시아 대사직을 끝내고 귀국했다. 당시 대한태수도협회는 1963년 10월에 열린 제44회 전국체육대회에 참가한 후 64년 4월 3일 협회 규약을 개정하고 2대 회장으로 박종태(공화당 국회의원)를 추대했다. 그러나 박종태는 실무 회장이 아니어서 이종우와 엄운규가 실권을 행사했다.

최홍희는 ‘태권도’를 사용하지 않는 것에 불쾌했다. 우선 대한태수도협회를 거머쥐어야 한다는 생각에 설득과 압력을 가해 1965년 1월 대한태수도협회 회장이 됐다.

*1965년 대한태권도협회로 개칭

최홍희는 ‘태수도’를 떼어내고 10년 전 작명해 발표한 ‘태권도’를 협회 명칭에 넣기 위해 적절한 때를 기다렸다. 이윽고 1965년 8월 5일 이사회에서에서 협회 명칭을 바꾸자고 승부수를 띄웠다.

이 과정에서 당시 수박도회를 구성하고 있던 무덕관 김영택이 최홍희에게 힘을 실어줬다. “수박도회와 태수도협회가 통합한 이상 어느 한 쪽의 기존 명칭을 쓸 수 없으므로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진 태권도로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회장이었던 최홍희의 강한 의지에도 협회 명칭을 ‘태수도’에서 ‘태권도’로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다. 반대하는 이사들도 적지 않았다. 결국 이견을 좁히지 못해 무기명 투표를 한 끝에 8대7로 협회 명칭이 ‘대한태권도협회’로 개칭됐다.

당시 이종우는 협회 명칭을 바꾸는 것에 반대했다. 이종우의 후일담.

“(태수도로) 한번 정했으면 됐지 왜 자꾸 바꾸느냐고 따졌다. 그랬더니 최홍희가 체육회에 압력을 넣어 사태가 아주 복잡해졌다. 나는 그때 ‘왜 체육회가 명칭까지 바꾸려고 하느냐?”면서 싸우기도 했는데, 결국 태수도 간판을 내리고 태권도로 갈 수 밖에 없었다.”(월간 신동아. 2002년 4월호.)

1955년 태권도 명칭이 발표된 지 10년만에 태권도는 공식 명칭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서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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