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3월 대한태권도협회 제17대 회장인 이필곤 회장이 대한태권도협회 깃발을 휘날리고 있다. 사진=대한태권도협회

김운용 “태권도 발전하려면 대기업이 맡아야”
3년 동안 약 30억 원 출연, 협회 예산에 보태
‘재미있는 태권도’ 내세우며 삼성물산팀 창단

태권도 출신 임원들과 반목, 불협화음 속 퇴진

1995년 12월, 대한태권도협회 회장 최세창은 구속을 앞두고 사의를 표명했다. 곧 제정될 ‘5.18특별법’에 따라 금고 이상의 처벌을 받을 경우 대한체육회 규정상 회장직을 자동적으로 상실하게 될 처지였다.

집행부가 일괄 사퇴하면서 새 회장선거 바람이 불었다. 태권도 원로 엄운규(국기원 부원장)와 1960년 초 첫 태권도 국가대표 출신 이승완(경북매일 발행인) 등이 출마 채비를 했다. 엄운규 후일담.

“지방 출장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데 김운용 원장이 만나자고 연락을 해 왔다. 만나자마자 김운용 원장은 회장선거에 출마하는지 물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아니라고 대답했다. 출마할 생각이 없었는데, 이승완 씨가 출마한다고 하니까 그와 경쟁할 맞상대로 태권도계가 나를 거론한 것이다. 김운용 원장은 새 회장은 기업체에 맡겨 태권도 대학을 만들자고 제안해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국기원(2017). 외길 70년, 현대 태권도의 기틀을 다짐 엄운규.>

대한태권도협회는 1996년 1월 하순, 정기대의원총회를 열고 회장을 선출하려고 했지만 출마 의사를 밝혔던 엄운규와 이승완이 동반 사퇴하기로 전격 합의함에 따라 새 회장과 집행부 구성 권한을 김운용에게 일임(一任)했다. 김운용은 삼성그룹 이필곤(삼성물산 총괄부회장)을 새 회장으로 추천했다. 태권도가 발전하기 위해선 대기업 경영인이 회장을 해야 한다는 신념에 따른 것이다.

1996년 3월, 대한태권도협회 제17대 회장에 이필곤이 취임했다. 이것은 대기업 삼성이 대한태권도협회를 맡은 것이어서 국내 체육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1994년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후 대기업이 태권도 중흥에 기여해야 한다는 여론이 작용한 셈이다.

이 같은 의미를 반영하듯이 3월 20일 호텔신라에서 열린 회장 취임식은 정재계·체육계·학계·언론계 등 200여 명의 유명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이날 취임식에는 김영삼 대통령이 출전을 보내왔고, 문화체육부 장관은 축사에서 “기업에서 높은 덕망과 경륜을 쌓으면서 우리나라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하신 탁월한 경영인이 태권도협회 회장을 맡아 그 능력을 태권도 발전을 위하여 이바지하실 것으로 생각되어 태권도 내일에 대한 기대가 크다. 문화체육부도 국기 태권도의 발전을 위해 정책적인 지원을 한층 강화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장 김운용은 축사를 통해 “태권도 규칙을 현대화하고 태권도 종주국다운 태권도전당을 건립하는 일, 그리고 태권도 올림픽 영구 정식종목 추진 등 중요한 일들이 남아 있는 이 때 재계를 비롯 사회 각 분야에서 덕망과 경륜을 갖춘 이필곤 씨가 회장으로 취임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이필곤은 취임사에서 “태권도를 21세기 세계 스포츠문화의 총아로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데 종주국협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국민에게 사랑받는 태권도 문화를 가꾸어 나가도록 하기 위해 도장운영, 경기방식, 권위의식 등 태권도 발전을 저해하는 많은 요소들을 과감히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필곤을 비롯한 새 집행부는 ‘국민과 세계인이 사랑하는 태권도 문화 창조’를 사업목표로 설정하고, 세부 추진 내용으로 △재미있는 태권도 △보람찬 태권도 △미래가 있는 태권도를 지향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2001년까지 추진할 주요 추진 사업은 ▲태권도센터 건립 추진 ▲태권도 발전기금 조성 ▲시도태권도협회와 연맹 지원 확대 ▲삼성 태권도단 창단 ▲시드니올림픽 대비 선수 훈련 지원 ▲장학사업 대폭 확대 ▲연구개발 사업 추진 ▲회원 서비스 향상 등이라고 밝혔다. <대한태권도협회. 태권도. 1996년 3월호.>

이처럼 삼성회장사가 대한태권도협회를 맡으면서 사업예산이 대폭 증액됐다.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승인한 1996년 수지예산은 13억9천8백만 원이었지만 이필곤 회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무려 11억5천만 원이 증액된 25억4천8백만 원으로 확정됐다. 이 안에 회장단 찬조비는 12억5천만 원이었다.

1997년 1월 대한태권도협회 정기대의원총회 모습. 사진=대한태권도협회 태권도지 1997년 3월호.

대한태권도협회 살림살이는 1년이 지난 1997년에는 더 좋아졌다. 그 해 1월 중순 올림픽회관에서 열린 정기대의원총회에서 31억 6천만 원의 예산안과 사업계획을 승인했다. 97년도 수지예산은 대한체육회 가맹 경기단체 가운데 개인 경기종목 단체로는 가장 많은 액수였고, 단체 경기종목까지 포함하면 3위에 랭크됐다. 회장단 등 찬조비는 10억 7천만 원이어서 삼성회장사의 ‘힘’을 느끼게 했다. 이처럼 예산이 증가하자 선수들과 각 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회 참가비를 없애 연간 약 1천 5백만 원의 대회 참가비가 감소했다. <대한태권도협회. 태권도. 1996년 9월호.>

이에 앞서 1996년 7월, 대한태권도협회는 올림픽공원 안에 있는 편익시설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체육계와 태권도계 주요 인사들과 사무실 현판식을 가진 이필곤은 인사말에서 태권도 3대 목표로 태권도 올림픽 영구 종목화, 국민 속으로 파고드는 태권도 생활체육화, 태권도 종주국으로서 위상확립 등을 제시했다.

1996년 9월에는 올림픽회관 대회의실에서 ‘태권도 발전을 위한 대토론회’를 열고 태권도센터를 세워 종주국의 위상을 확실하게 정립해 나가기로 했다.

당시 태권도센터 건립 방안의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대한태권도협회가 토론회에 참석한 18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98.9%가 건립을 지지했다. 건립 명칭은 태권도전당 10.3%, 태권도성전 8.1%, 태권도회관 4.9%, 국기원 4.9%로 응답해 한동안 사용해왔던 태권도센터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다만 태권도전당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지만, 1992년 북한이 평양 청춘거리에 태권도전당을 건립했기 때문에 사용해선 안 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건립 명칭은 태권도성전이 급부상했다. 건립 위치는 서울 근교가 51.9%를 차지했고, 건립기금 조성은 정부와 기업, 태권도인이 함께 해야 한다는 응답이 89.2%로 압도적이었다.

그 해 12월 (가칭)태권도성전 건립추진위원회 창립총회가 서울올림픽파크텔에서 열렸다. 각계 인사 62명으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명예위원장은 김운용, 위원장은 이필곤, 고문은 김집이 추대됐다. 건립추진위원회는 재원 마련을 위해 5천 2백 개소 일선 태권도장과 370만 명 태권도 유단자 중심으로 건립 성금 모금운동을 전개하고 정부와 체육진흥기금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가기로 했다. 태권도성전 안에는 경기장을 비롯해 지도자연수실, 전문연구동, 시범관, 국제회의장, 박물관 등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대한태권도협회 상임부회장 이흥주(삼성전자 상임고문)는 창립총회가 열리기 전 기자간담회를 갖고 태권도성전 건립 추진과 관련,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년 안에 부지선정과 기금모금 방안, 설계와 명칭 제정에 관한 광범위한 국민 의견을 수렴할 것이며, 실질적으로 활동하게 될 집행위원회가 구성된 후 구체적 복안을 잡게 될 것입니다. 태권도성전 건립은 단순한 경기 시설물이 아니라 전통미를 살린 현대적 기능의 건물이어야 하기 때문에 부지선정 등 설계 기간을 충분히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한 경기단체가 주관하여 전용 건물을 짓는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입니다. 태권도가 국기라는 특수한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뜻 깊고 의미 있는 역사적 사업이 반드시 성공적으로 성사되리라 확신합니다.” <대한태권도협회. 태권도. 1997년 1월호.>

하지만 이필곤 회장 체제는 출범한 지 1년 만에 내부 갈등으로 빈축을 샀다. 1997년 2월 중순, 대한태권도협회 기술심의회 임명장 수여와 표창식이 열린 올림픽회관 대회의실은 고성과 몸싸움이 오고 갔다.

상임부회장 이흥주가 기술심의회 각 분과위원회 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주려고 하자 “회장사인 삼성그룹의 독단적인 임명”이라는 고함이 들렸다. 이 같은 소동은 기술심의회 구성을 놓고 상임부회장 이흥주 쪽과 이를 반대하는 부회장 이승완과 전무이사 김철오 쪽 간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이승완은 부회장단 회합에서 이흥주와 일부 부회장이 제시한 황춘성 의장 재임안에 반대했다. 그러자 이흥주는 김철오에게 ‘복수 후보안’이라도 만들 것을 지시했으나 김철오가 묵살하자 직권으로 기술심의회 임명을 결재한 후 삼성그룹 중국본사 회장으로 가 있는 이필곤에게 최종 재가를 받아 각 분과위원회 위원장을 확정했다.

이에 김철오 지지파는 반발하며 삼성그룹사에 몰려가 이흥주 면담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김철오는 이날 “축구협회 정몽준 회장이 40억 원을 쓰고도 경기인을 무시했다가 경선을 벌여 3분의 2 지지를 받고 당선됐다. 기술심의회 만큼은 태권도인의 몫이기 때문에 삼성의 관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다.

두 진영 간의 대립은 상임부회장이 이겼다. 1997년 3월, 대한태권도협회 이사회를 열어 전무이사를 전격 해임했다. 김철오 지지파들은 이사회가 열린 호텔에 몰려가 해임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소란을 피웠다. 이에 앞서 국기원에서 열린 국가대표선수선발대회에서 김철오 지지파들은 전무이사를 거치지 않고 상임부회장이 독단적으로 기술심의회를 구성했다며 상임부회장과 결탁한 의장을 단상에서 끌어내리는 등 소동을 벌였다.

이것을 두고 한 언론은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 대한태권도협회는 국내 재벌 굴지의 재벌사로부터 지원을 받아 순풍에 돛 단 격으로 발전을 거듭할 것으로 기대됐다. 당시만 해도 대한태권도협회는 여러 체육단체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회장사 출신 상임부회장과 태권도인 출신 전무이사의 쌍두마차 체제가 구축되면서 협회는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이번 ‘태권도 사태’는 어느 한 쪽의 옳고 그름을 떠나 재벌사와 경기인 출신 임원 간의 마찰 관계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겨레. 1997년 3월 24일.>

1998년 2월, 삼성스포츠단 대표이사 전수신이 대한태권도협회 상임부회장에 취임했다. 회장이 회사 업무로 중국에 파견 나가 있어 회장 직무를 대행하는 셈이었다. 그러나 그 해 10월, 이필곤이 서울시 행정부시장이 된 후 사퇴하면서 대한태권도협회 삼성 체제는 막을 내렸다. 협회 안팎에서는 그동안 삼성그룹에서 지원한 연간 10억 원 정도의 지원금이 끊기는 등 재정 손실이 크다고 우려했다.

1999년 봄, 이승완 대한태권도협회 상임부회장이 태릉선수촌을 방문해 태권도 국가대표팀에게 격려금을 주고 있다. 사진=대한태권도협회 태권도 잡지

한편 1998년 12월, 대한태권도협회는 김운용을 회장으로 다시 추대하고, 부회장이었던 이승완을 상임부회장으로 선임하는 등 제19대 집행부를 구성했다. 그 후 이승완은 김운용을 대신해 대한태권도협회 회의를 주재하고 국가대표팀에게 격려금을 전달하며 시드니올림픽 대표선발전에 관여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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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

  1. 이젠 이런 역사적인글도 관심이 없네요. 그저 태권도 관장님들 중 하나인 제가 요즘 느끼는 점은 점점 희망이 없어진다는것입니다. 얼마전 차량검사를 받는데 다시 하라고 하더군요 이유는 어린이 보호차량은 썬팅, 어린이 안전벨트를 해야된다면서요. 예전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어도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에 열심히 했는데 딴것을 해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자꾸만 드네요. 저만 그런건가 요? 내가 태권도인 이지만 태권도인이 너무 불쌍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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