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b8%b0%ec%9e%90%ec%9d%98%eb%88%88요즘 대학에서 강의하며 예전에 관심을 가졌던 태권도 ‘품새(품세)’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일본 가라테 카타(型)와 비교도 해 보고, 채점기준의 상이성도 탐색하고 있다.

국립국어원은 2011년 8월 국민 실생활에서 많이 사용되지만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했던 ‘품새’를 비롯한 짜장면과 택견을 표준어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품새는 품세와 함께 복수 표준어가 됐다.

여기서 되짚어볼 것이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태권도계에서 공식적으로 통용되던 ‘품새’는 정부가 인정한 표준어가 아니었다. 하지만 ‘품세’를 사용하면 맞춤법에도 맞지 않고 왠지 볼온해 보였다.

언제부터 태권도계가 가라테의 ‘카타’를 의미한 ‘형(型)’을 ‘품세(品勢)’로 칭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다만 1968년 대한태권도협회가 품세제정위원회를 구성해 팔괘품세와 유단자 품세를 만든 것을 보면 60년대 중반부터 품세를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품새’를 사용했을까? 국기원은 1987년 2월 26일 한글학회에서 한글학자 7명의 자문을 얻어 태권도 기본용어 중 일부를 우리말로 변경하고 3월 1일부터 사용했다. 그 때부터 ▴품세→품새 ▴연속차기→이어차기 ▴제비품 막기→비틀어 막기 ▴호신술→몸막기로 변경됐다. 품새의 ‘품’은 ‘모양새’, ‘새’는 ‘맵시’와 ‘꼴’을 의미한다고 한다.

하지만 국립국어원은 ‘품새’를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았다. 표준어는 ‘품세’였다. 실정이 이렇다 보니 관공서와 전시회에서 일반인들이 ‘품세’라고 표기하면, “품새가 맞다”며 항의하는 태권도인들이 있었다. 또 ‘품세’로 되어 있는 국어사전을 ‘품새’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었다.

논란이 일자 국기원은 2009년 9월 『태권도 기술 용어집』을 발간하면서 논란이 끊이질 않았던 ‘품세’와 ‘품새’ 중에서 ‘품새’를 쓰기로 결정했다. 그 후 국립국어원이 뒤늦게 ‘품새’를 ‘품세’와 함께 표준어로 인정했다. 이는 태권도계에서 널리 사용하고 있는 세태를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art_1430903214그렇다고 해서 태권도 제도권이 나서서 “품새를 사용하라”고 강요해선 곤란하다. 엄연히 ‘품세’와 ‘품새’는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표준어이기 때문에 이래라 저래라 강권할 필요가 없다. 각자의 취향과 소신에 따라 품세가 좋으면 품세라고 하고, 품새가 좋으면 품새라고 하면 된다.

하지만 ‘품세’와 ‘품새’ 중 어느 것이 옳은 것이냐 하는 논란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혹자들은 “품세와 품새 중 어느 것을 사용하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며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품세’와 ‘품새’ 논란은 가볍게 다룰 사안이 아니다. 태권도의 본질과 정체성을 결정하는 근간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산적인 담론 형성을 위해서라도 시시비비를 분명하게 가리는 토론을 가져야 한다.

‘품새’보다 ‘품세’가 온당하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이종우 원로와 양진방 교수다. 이종우 원로는 10년 전 연수원에서 기자를 만나 “모양새를 뜻하는 ‘새’는 생명감이 없고 고착된 형태를 나타낸다. 품세의 ‘세(勢)’에는 기품과 기세 등 형태적 변용과 생명력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며 ‘품새’를 ‘품세’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진방 세계태권도연맹 사무국장도 2002년 자신이 쓴 논문을 보여주며 “품새보다는 품세가 옳다. 품새라고 하면 왠지 무술이 지닌 변용적 가치를 축소하는 것만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품새의 ‘품(品)’과 ‘새’는 모두 ‘모양새’를 의미해 ‘역전(驛前) 앞’과 같다.하지만 품세의 ‘품’(品)은 영어로 풀이하면 ‘Form’(자세)을 의미하고, ‘세(勢)’는 ‘Movemant'(움직임) ‘Power’(힘) ‘Flow’(흐름) 등을 폭넓게 뜻한다”고 했다.

논의를 넓혀보자. 품을 뜻하는 ‘폼(Form)’은 사람이 어떤 동작을 할 때 취하는 몸의 형태를 의미한다. ‘자세’, ‘모양’, ‘자태’라고 할 수 있다. 문장을 예로 들면, <최진욱은 ‘폼’나게 새 구두를 신고 회사에 갔다>, <이교득은 최신형 카메라를 ‘폼’으로 메고 다닌다> 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세’(勢)가 붙으면 몸의 형태, 즉 자세와 기세, 힘, 흐름, 움직임 등이 보태져 마치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들게 한다. 생동감이 있고 역동적이다. 좀 비약하면 만주벌판을 달리는 야생마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품새는 그렇지 않다. ‘품’과 ‘새’는 특별한 차이가 없이 모양새, 됨됨이, 자태, 맵시 등을 의미해 뜻이 겹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강한 생명력도 느낄 수 없어 온실 속의 고양이를 연상케 한다. 1987년 한글화 바람에 따라 한글학자의 자문을 얻어 변경한 ‘품새’는 태권도의 무술성, 즉 무술의 특질과 변용을 간과한 채 ‘순우리말’로 태권도 용어를 바꾸려고 했던 시대착오적 패착이지 않을까?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이 있다. 품세와 품새가 지닌 무술적 뜻풀이 이외에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용어를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박성진 기자는 “거칠게 말하자면, ‘품세’라는 용어를 지지하는 쪽은 태권도의 뿌리인 가라테와의 정서적 거리를 크게 두지 않으려는 쪽이고, ‘품새’를 지지하는 쪽은 가라테의 영향을 탈피한 태권도를 만들고자 하는 쪽이라고 할 수 있다”며 “품새, 품세가 여전히 공동 표준어로서 인정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 두 단어 중 어느 단어에 심정적인 지지를 보내느냐에 따라 태권도를 바라보는 관점이 확연하게 갈린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품세와 품새의 용어 논쟁이 태권도 사관(跆拳道 史觀) 논쟁으로 확장되는 셈인데, 흥미로운 주장이다. 현재 태권도의 정체성과도 연관되는 것이어서 무술계를 포함한 태권도인들이 어떤 견해를 내놓을 지 주목된다.

<서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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