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타계한 고(故) 최홍희 국제태권도연맹(ITF) 창설자(이하 최홍희)를 둘러싼 ‘태권도 창시자’ 논쟁이 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ITF는 ‘최홍희=태권도 창시자’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ITF에 소속되어 있는 단체와 태권도인들은 △국제적 명성의 브리태니커 사전에 최홍희가 태권도 창시자라고 명기돼 있고 △1955년 ‘태권도’ 명칭을 만들었으며 △태권도 5대 정신과 틀(창헌류) 등 독창적인 기술체계를 확립했기 때문에, 최홍희는 태권도 창시자라고 해도 무방하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특히 1959년 태권도계 최초로 『태권도교본』를 펴낸 데 이어 『태권도지침』과 『태권도백과사전』 등 역작을 출간한 것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는 게 중론이다. 그를 보좌했던 정순천 씨는 “1800개의 태권도 술어와 3200여 개의 동작을 만들어 낸 것은 최 총재가 사선을 넘으면서 일구어낸 파노라마와 같다”고 평하기도 했다.

북한 ITF도 최홍희를 태권도 창시자라고 지칭하며 예우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최홍희 탄생 100주년 추모식에서 <조선중앙통신>은 북한 태권도 단체들이 정통 태권도를 과학적인 무도로 발전시키고 인류에게 태권도를 보급하기 위해 애쓴 그를 추모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국기원과 세계태권도연맹(WT) 안팎에서는 ‘최홍희=태권도 창시자’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타계)은 “태권도 창시자란 태권도를 처음 시작한 사람을 의미하는데, 우리들은 그와 같은 의미에 동의하지 않을 듯싶다. 왜냐하면 최홍희가 오늘날 태권도를 처음 시작하고 보급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인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ITF와 거리를 두고 있는 태권도계는 최홍희가 창안한 태권도와 국기원 및 세계태권도연맹이 추구하는 태권도가 다르다는 것을 언급하며 “최홍희는 ITF 창설·창시자일 뿐”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태권도 수련 및 기술체계가 다른데, 어떻게 최홍희를 태권도 창시자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나영일 서울대 교수는 2006년 국기원이 주최한 ‘태권도 역사-정신 연구 세미나’에서 “남한을 배척했다고 해서 최홍희가 사망한 지금까지도 백안시한다는 것은 조금 지나친 처사이다.  ‘태권도’라는 이름을 새롭게 만들어낸 최홍희의 공(功)은 크다”고 하면서도 “태권도를 그가 홀로 창시했다고 하는 것도 지나치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 ITF 사범으로 북유럽에서 활동한 림원섭 사범도 최홍희를 비판했다. 그는 1998년 10월 <태권도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최 총재의 회고록 『태권도와 나』 책에는 태권도 동작 사진이 15개 있다. 그 중 중복된 동작 사진은 5장이 있어 실상은 10장의 동작 사진이 있는데, 5장 동작은 태권도 동작이 아니다. 가라테 동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옆차기는 가라테 동작과 똑같다. 이는 교묘히 우롱하는 처사”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1월 ‘최홍희 탄생 100주년’을 맞아 ‘태권도와 삶 ; 최홍희 어떻게 볼 것인가’ 학술대회가 한국체육대학교 합동강의실에서 열렸다.

태권박스미디어(대표 구민관)와 한국체육대학교 태권도학과(학과장 장권)이 공동 주최하고, 태권박스미디어가 주관한 이날 학술대회에서 ‘태권도 창시자’ 논쟁이 재점화했다.

허건식 발제자(2019충주세계무예마스터십조직위원회 기획조정본부장)는 ‘무예 인물사로 본 최홍희’ 발표에서 “세계 태권도를 이끈 두 분은 최홍희와 김운용”이라고 운을 뗀 뒤 “최홍희가 태권도를 창제·창시한 것이 맞다고 본다. 태권도를 100% 만들어야 창시와 창제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최홍희는 ‘Found’(창설자·설립자)이다. 태권도 이념을 부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허 박사는 “태권도 현대사 70년 역사 속에서 특정 인물을 평가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최홍희라는 인물은 가장 기초적인 태권도 연구 영역에서 중요한 기초를 깔고 있다. 최홍희 태권도 창제·창시론 논쟁은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병철 발제자(99운동과학연구소장)은 ‘최홍희 창시자 논란과 공과 재조명’ 발표에서 “태권도는 5대 관(館)에서 시작됐지만 5대 관이 동일하게 각 20%의 지분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홍희 지분이 가장 많아서 대주주라고 보고 있다”며 “민족주의자 최홍희에 대한 객관적인 재평가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박사는 “현재 태권도는 가라테와 중국 북방무술이 적절히 섞여 있는 것 같고, 한국 토착화 과정에서 우리 몸짓이 들어갔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하다”고 하면서도 최홍희가 태권도 창시자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듯한 말을 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허 박사와 한 박사가 ‘최홍희=태권도 창시자’에 별다른 반대를 하지 않자 곽정현 토론자(가천대 태권도학과 교수)는 즉각적으로 반론을 폈다.

그는 “태권도가 오랜 시간 변화·발전한 무술이라고 생각하는데, ‘태권도 창시자’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은 어느 한 시기에 나타난 ‘창작 무술’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고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박성진 토론자(인사이드태권도 기자)는 “최홍희는 가노 지고로(유도 창시자)보다는 (오키나와테 당수도를 일본 공수도로 바꾸는데 큰 역할을 한 후나고시 키친(근대 가라테 아버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태권도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무술에 창시자가 있냐 없냐 라고 하는 점에서 최홍희를 태권도 창시자라고 하는 것은 좀 어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홍희를 둘러싼 태권도 창시자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태권도 기관과 학계에서 진척된 연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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