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의 최홍희 총재가 ITF 세미나에서 시연하고 있다.
11월 17일 오후 한체대 합동강의실에서 열려

“남한을 배척했다고 해서 최홍희가 사망한 지금까지도 백안시한다는 것은 조금 지나친 처사이다.  ‘태권도’라는 이름을 새롭게 만들어낸 최홍희의 공(功)은 크다. 그렇다고 태권도를 그가 홀로 창시했다고 하는 것도 역시 지나치다.” – 2006년 11월 나영일 서울대 교수, 국기원이 주최한 ‘태권도 역사-정신 연구 세미나’에서

‘태권도(跆拳道)’ 명칭을 만들고 국제태권도연맹(ITF)을 창설한 고(故) 최홍희 총재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를 추모하고 논란을 되짚어 보며, 공과(功過)를 재평가하는 학술대회가 열린다.

태권박스미디어(대표 구민관)와 한국체육대학교 태권도학과(학과장 장권)는 오는 11월 17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한국체육대학교 합동강의실에서 (가칭) ‘태권도와 삶 ; 최홍희, 어떻게 볼 것인가?’를 개최한다.

이번 행사를 주관하는 태권박스미디어는 10월 18일 주제발표자와 토론자를 모두 섭외하고, 일정과 장소 등을 확정했다. 발제는 허건식 박사(충주세계무예마스터십 기획조정팀장)와 한병철 박사(88운동과학연구소장)가 맡았다.

각 5분씩 의견을 개진하는 토론자는 김지혁 광주대 교수, 유승희 ITF-KOREA 사무총장, 곽정현 가천대 태권도학과 교수가 맡는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태권박스미디어 서성원 편집장은 “태권도 현대사의 핵심 인물인 고(故) 최홍희 총재에 대해 태권도 전공생들도 잘 모르고 있다”면서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태권도 삶을 반추하고 재평가하는 기회로 삼겠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에 대해 정우진 재미 사범과 류병관 용인대 교수 등 태권도인들이 “의미있는 일을 한다”며 박수를 보내고 있다.  국내외 태권도인들의 많은 관심과 참가를 기대한다.

 

Print Friendly, PDF & Email

7 COMMENTS

  1. 태권도라는 무술이 탄생한 배경에는 많은 주장들이 분분하다. 하지만 오늘 날의 태권도가 있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태권도라는 무술이 가지는 가치를 믿고 발전시켜온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태권도는 무술의 가치를 넘어 다른 측면에서 현재는 삶의 일부가 되었다. 단지 태권도를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사람의 생각과 정신 그리고 자세가 바뀌는 것은 태권도가 기술뿐만아니라 대단한 무언가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태권도를 창시했다고 알려진 최홍희장군의 삶 자체도 그러한 정신에서 비롯되어 현재까지 잘 보존되고 발전해 온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2. 최홍희 장군은 김운용 전 대한태권도협회장을 더불어 태권도를 일으켰다고 볼 수 있는 인물 중 하나 인 것은 알고 있으며, 태권도 전공자임에도 역사를 잘 모르는 학생이 많은 것도 알고 있습니다. 태권도 역사를 배우면 빠짐없이 나오는 그가 왜 오직 단일인물로 창시자라고 할 수 없는지, 왜 그가 남한을 배척했는지, 태권도가 왜 두 가지의 특성을 가지어 나눠지게 되었는지 등 태권도의 기틀과 역사를 다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최홍희 장군의 삶이 어땠는지 알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큽니다!

  3. 서성원 기자는 태권도 역사를 고치는 역사적인 일함니다. 많은 동참을 바람니다.세게는 태권도 역사를 SNS 로다암니다.
    미국 TKD Times 정우진.

  4. 최홍희 태권도 창시자가 대한민국을 배척 했다고? 절대 배척한적 없읍이다. 그는 27년을 함경도에서 살고 27년을 한구에 살명서 사단장 과 군단장 을 역임 마지막 직은 말래시아 대사로 공직을 그만 두었읍이다. 또 27년은 카나다에서 거주 태권도 를 200 여 국가에 보급했으며 이세상 곳곳에 다니면서 한국어 도 가르쳤읍이다. 그는 대한민국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에 태권도 를100%가르쳤고 내무부치안국(지금의 경찰청 ㄷ을 100% 태권도 를 가르첬다. 1967년 까지 송무관 청도관 지도관 무덕관 한무관 연무관 창무관 등은 100% 당수도 공수도 즉 가라데 를 가르쳤든 것 은 사실 입이다. 손바닥으로 하늘 을 가리우지 못함 같이 역사는 숨길수 없읍이다. 살아 있는 태권도인 김종찬.

  5. 1076년 올림픽 이 몬트리얼 에서 개최 되었을때 최홍희 장군이 나를 방문 하셨읍이다.그때 나는 창시자 님께 말씀 드렸읍이다, 태권도가 올림픽에 참가 하려면 공산권 에 보급되 지 못하면 불가능 하다고. 그후 1980년에 최창근 관장 댁에서 다시 건의 하면서 북한에 10명의 태권도 시범단을 인솔 하여 시범을 하고 그 팀이 서울에 가서 시범을 보이면 태권도 는 태권도가 앞장 서 통일 됨이다, 3사람 모두 합의 되었다

  6. 김종찬 선배님!
    8월 아르헨티나에서 4박 5일 합숙하며 인터뷰 형식의 대화를 통해 근대 태권도 역사에 대한 소중한 증언을 들었습니다.
    그러한 기회를 통해 많은 영상과 자료가 수집되었고 ITF본부가 다시 대한민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관계기관과 지방자치단체들과 협의중에 있습니다.

    저는 과거 대한태권도협회 연구위원으로 김용옥 선생과의 학술세미나 멤버로 “태권도철학의 구성원리” 집필 등에 참여 했었지만 김종찬선배님 처럼 생생한 태권도 역사에 대한 증언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태권도에 대한 애정과 사랑에 무한한 신뢰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보냅니다.
    아울러 위 행사가 알차게 마무리 되길 기원합니다.
    ITF 연구소장 김성칠 올림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