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진 사범의 에티오피아 태권도 통신(3)]

#해외 사범 생활의 첫 번째 가이드라인 : 용기와 자신감 그리고 이해

2019년 새해가 밝았다.
이 곳 에티오피아는 고유 달력과 시간을 쓰는 나라여서 그런지 새해 느낌이 전혀 없다. 에티오피아는 지금 5월이다.

내가 한국을 방문할 때, 선배들이 부탁을 해서 대학교나 태권도협회, 그리고 젊은 사범들의 모임에서 종종 특강을 할 때가 있다. 그들에게 에티오피아라는 나라를 소개하고 또 해외에서의 삶을 이야기해주며 그들이 해외에서 태권도 일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대화를 많이 나눈다.

타국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려면 어떻게 계획을 세우고 무엇부터 준비해야 하는지는 유명한 사범님들의 활동과 자서전을 통해서 충분히 얻을 수 있다.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나는 사범님들처럼 유명하지도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이 글을 통해 내가 계획하고 준비하며 겪은 이야기들을 풀어보려고 한다.

내 나이 35살,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를 통해 2년 동안 동유럽 우크라이나에서 태권도 봉사활동을 했다. 35살에 국제선 비행기를 처음 타 보았다. 게다가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도 못하는 내가 우크라이나에서 2년 동안 얼마나 즐겁고 씩씩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코이카 프로젝트까지 하며 살았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무모하기도 했고 우습지만 그 때의 경험이 지금 에티오피아에서 정부파견사범 일을 하는 것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경험이 최고의 교사’라는 말처럼 나는 젊은 사범들이 월급, 근무환경, 조건 등을 따지지 말고 일단 부딪혀서 경험을 쌓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경험은 좋은 여건에서 겪는 경험과 악조건에서 겪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내가 한국에서 태권도장을 하며 수련생들을 가르치다가 이 곳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파견되어 나왔다면 어쩌면 적응을 못하고 돌아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악조건이라면 악조건인 옛 공산국가였던 우크라이나에서의 생활과 경험이 이 곳 에티오피아에서 겪고 있는 모든 일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된 것 같다.

그리고 타국에서 살아보니 언어는 별 장애가 되지 않았다. 에티오피아는 공통어가 영어, 암하릭어인데, 앞서 언급했듯이 80여 개가 넘는 종족이 자신들만의 고유 언어가 있어 에티오피아인들끼리도 소통이 안 될 때가 있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나처럼 80여 개의 언어를 다 알고 있을까? 우크라이나에서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를 잘하지 못하면서 2년을 잘 살았던 것처럼 이 곳에서도 언어는 완벽하지 않아도 잘 적응하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래서 당당하게 여러분들에게 말할 수 있다. 여러분들의 열정과 그들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진심만 있다면 언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살고자 하는 곳에 가서 몸으로 부딪치면서 공부를 해도 늦지 않는다. 그러니 고민하지 말라. 어디든 한국 사람이 살고 있다.

이렇게 말해도 영어는 잘하면 잘할수록 좋다. 젊은 사범들이나 해외에서의 태권도를 보급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면 지금부터 영어 공부를 하라고 권한다.

#에티오피아 태권도 이야기 : 가진 것이 없다고 불행하지 않다

넓은 대륙에 태권도 종주국 한국에서 온 사범은 오직 1명. 나 혼자서 모든 걸 결정하고 처리해야 한다. 에티오피아에 주둔하는 대사관, 코이카, 각종 NGO 단체는 자신들의 사무실도 있고, 파트별로 해결할 수 있는 담당자들이 있지만 정부파견사범인 나로서는 훈련 스케줄, 미팅 스케줄을 혼자 결정하고 잡아야 한다.

그러다가 한국에서 물건이라도 보내면 대사관으로, 공항으로 뛰어 다니며 택배를 찾으러 다녀야 한다. 소속 기관에서 도와주기도 하지만 속속들이 도움을 받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이야기를 다 적다보면 아마도 드라마 몇 편은 찍고도 남을 것이다.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추진해야 하므로 그 만큼 막중한 책임감이 내 어깨를 짓누르곤 한다. 그런 책임감을 안고 태권도 실태를 조사하고 홍보하기 위해 지방으로 나가 보면 수도에서 불편하게 생각했던 모든 일들이 배부른 고민이었구나 하는 걸 절실히 느낀다.

수도에서 30∼40km만 나가도 상황은 완전히 바뀐다. 태권도 홍보 때문에 막상 나간 출장이지만, 태권도보다 환경 개선과 먹고 사는 문제가 먼저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처음에는 안쓰럽고 불쌍한 마음으로 느꼈던 시선들이 내가 여기서 해야 하는 일들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2년이 지나서야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리고 그들의 마음의 상처를 알아가면서 알았다.

그렇게 바라 본 시선들이 나의 책임감만 무겁게 만들었고, 점점 나를 무능력한 사범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내가 왜?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시키지도 이해를 받으려고도 하지 말자고 수 백 번 되새겼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잘 사는 국가라서, 인터넷이 빨라서 늘 옳고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조금은 느려도, 이해가 안 되어도, 그들만의 규칙이 있다고 생각하고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나니 작은 것에도 성취감을 느끼고 작은 발전에도 감동하게 됐다. 조금씩 조금씩 나를 바꿔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시설이 좋은 태권도 전용 경기장과 훈련장은 없지만 태권도 종주국인 대한민국에서 온 ‘마스터’라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는 에티오피아 태권도인들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행복하게 살아간다. 가진 것이 없다고 불행하지는 않다. 지금 가지고 있는 작은 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으니까. (연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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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 김사범!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구절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그렇게 느끼고 살아가는 모습은 자신의 내면을 더 크게 살 찌우면서 항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힘찬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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