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완 원로

*자신의 색채로 태권도 현대사 그려 나가
*태권도 삶은 개인 기록이자 태권도 실록
*가공 아닌 사실 토대로 생애사 집필해야

2019년 4월 7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이승완 원로 산수연(傘壽宴)이 열렸다. 이날 팔순 잔치엔 가족들을 비롯해 지도관(智道館) 출신의 태권도인들과 지인 등이 참석해 그의 80세를 축하했다.

전언에 따르면, 이 원로는 여러 이유로 팔순 잔치를 극구 사양했다. 하지만 제자들은 “칠순 잔치도 하지 않았는데 팔순 잔치는 꼭 해야 한다”며 그를 설득했다.

이 원로는 태권도 현대사 핵심 인물 중 한 명이다. 195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그가 수놓았던 삶은 태권도 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다.

그는 자신만의 색채로 태권도 현대사를 그려 나간 풍운아였다. 그의 스승이자 선배라고 할 수 있는 윤쾌병·이종우·엄운규 원로들과 격한 논쟁과 날선 대립도 마다하지 않았던 마초(macho) 기질로 태권도 물줄기를 바꾸거나 권력의 향배를 결정하기도 했다.

또 태권도 파벌(계파)의 우두머리 행보가 너무 짙어 곳곳에 정적(政敵)이 많았고,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싫어하는 사람들이 명확하게 갈리는 ‘호불호(好不好) 인생’을 살아왔다.

1950년대 중반, 이승완 원로(왼쪽에서 세번째)가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1940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지도관 전북도본관에 입관해 태권도를 배웠다. 청소년 시절부터 리더십과 강단이 좋고 태권도 실력도 출중해 전일섭 전북도본관장을 비롯한 사람들은 그의 존재감을 인정했다.

이러한 강점을 바탕으로 1961년 전주에 체육관을 개관해 전주공업고 학생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쳤다. 박연희, 황대진 사범들이 그 때 제자들이다.

그 후 윤쾌병 사범에게 1단부터 4단까지 지도관 단증을 받은 후 1962년 대한태수도협회(대한태권도협회 前身) 실기 심사를 거쳐 5단증을 취득했다. 1963년에는 첫 국가대표선수선발대회(1-3차)에서 최종 선발된 후 주장이 되어 일본 공수도 선수들과 친선경기를 했다.

1960년대 후반에는 해병대 태권도부를 창설하고 초대 감독을 맡았다. 초창기 선수들은 김인수·유기대·최영렬·최동진 등을 지도해 대통령기하사기쟁탈대회 5연패를 했다.

1980년대 중반, 서울 을지로에 있었던 한국체육관 지도관 중앙본관 앞에서 이승완 원로가 이종우 2대 관장, 제자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잠시 태권도계를 떠나 있던 그는 1986년 이종우 2대 관장의 뒤를 이어 3대 관장에 취임했다. 그 후 태권도 고단자회 일원으로 활동하던 중 태권도 전문지를 창간하고 1996년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선거를 발판으로 태권도 제도권에 입성했다.

그 후 대한태권도협회 상임부회장, 국기원 이사와 원장, 대한태권도협회 회장 등을 두루 거치며 20년 넘게 태권도 제도권의 한복판에 있었다.

2010년 6월, 7개월 동안 원장직을 수행한 그는 국기원을 떠나면서 다음과 같이 퇴임사를 남겼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격랑의 세월이었습니다. 오늘 저는 비록 떠납니다만, 오로지 국기원과 태권도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다는 제 순수성과 진정성을 믿어 주시는 여러분들이 있기에 저는 외롭지 않습니다(…) 국기원을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확대, 운영해야 한다는 점을 단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 방안으로 해외지원을 설립한 것입니다. (…) 저는 그동안 국기원의 자율성 확보에 모든 힘을 쏟았습니다. 정부의 개입과 지나친 간섭은 국기원 발전의 발목을 잡는 행위입니다. 정부의 직무 범위는 국기원을 지원하는 것으로 엄격히 제한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태권도인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할 수 없습니다. 태권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 그것이 어떻게 국기원이라 할 수 있습니까?(…)”

이 원로는 회고록(回顧錄)을 써야 한다. 주위에서 적극 권장해야 한다. 그가 걸어온 태권도 궤적은 선명하다. 풍경화를 보는 것처럼 또렷하다. 이 원로의 생애와 비록(祕錄)은 개인의 기록인 동시에 태권도 실록이다. 태권도 현대사의 영욕과 질곡과 흐름이 오롯이 담겨 있다. 또 비록에 있는 수많은 이야기는 태권도 현대사에 새로운 의미와 해석을 풍성하게 하는 ‘창고(倉庫)’ 기능을 할 것이다.

물론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자기 미화·방어적 내용과 아전인수 식의 증언은 걸러내고 솎아내야 한다. 사실(fact)을 토대로 그의 생애를 재구성하되 가공의 이야기가 있어서는 안 된다.

현재까지 출간된 태권도 회고록과 생애사는 최홍희·김운용·엄운규·이준구·정우진  등 10명도 되지 않는다. 이 원로가 기존의 회고록과 생애사를 뛰어 넘는 기록물을 꼭 남겼으면 좋겠다. 그것은 태권도 후진들을 위한 선물이고 소명이다.

<서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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