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진 사범과 에티오피아 태권도 수련생

 

태권박스미디어에 첫 ‘에티오피아 태권도 통신’을 연재한 후 많은 분들이 나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또 그동안 잊고 지내온 선·후배들로부터 격려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었다. 더불어 현재 대한민국의 태권도 젊은 인재, 그리고 사범들이 나로 인하여 또 다른 인생의 지표가 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독특한 에티오피아 문화
에티오피아에 와서 한동안 힘들었던 것이 ‘날짜’와 ‘시간’에 대한 이해였다. 아마도 무슨 소리인지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가장 빠른 이해의 방법은 인터넷 검색이다. 에티오피아의 달력은 현재 2011년이다. 에티오피아 새해 1월 1일은 유럽피안 캘린더 9월11일이다. 매월 30일, 13월까지 있는 나라이다.

또한 시간이 다르다. 세계적으로 독특하게 날짜와 시간이 다른 나라이다. 아침 6시(06:00)와 저녁 6시(18:00)가 에티오피아에서는 ‘00:00시’가 된다. 크리스마스도 1월 7일이다. 종교적인 탓으로 이런 문화때문에 내가 여기 와서 날짜와 시간 약속을 정할 때 엄청 헷갈려서 고생했다.

에티오피아 파견 사범에 합격할 때만 해도 온통 머릿속에는 가난과 아프리카라는 고정관념부터 더위, 말라리아, 하이에나, 사자 뭐 이런 것만 생각났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에티오피아에 감사한 나라이다. 1935년 이탈리아의 침략을 받은 에티오피아 군은 끝까지 싸웠으나 결국 패하고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영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가 결국 제네바 국제연맹에 가서 세계 지도자들에게 도와줄 것을 호소하였지만 세계 어느 나라도 에티오피아를 선뜻 돕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결국 어떤 나라도 도움조차 기대할 수 없게 되자 셀라시에 황제는 에티오피아 젊은이들을 모아 군사훈련을 시키고, 1941년 드디어 이탈리아를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그 후 UN이 설립되자 셀라시에 황제는 UN에서 “에티오피아가 힘들 때 아무도 우리를 도아주지 않았지만 원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와 같은 나라가 나오지 않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 약한 나라를 도와주자”라는 ‘집단안보’를 주장하고, UN은 셀라시에 황제의 의견을 받아 들였다.

‘집단안보’는 세계 평화를 향한 진보적 한 걸음을 떼게 한 위대한 결과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 후 첫 번째로 발발한 전쟁이 1950년 한국전쟁이다. 전쟁이 터지자, 셀라시에 황제는 ‘집단안보’를 주장하며 UN이 한국을 도울 것을 강조하고, 셀라시에 황제는 왕실 근위대였던 ‘강뉴부대’ 파병하였다.

셀라시에 황제는 “우리 에티오피아가 항상 추구해왔던 세계평화를 위한 집단안보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그대들은 오늘 장도에 오르는 것이다. 가서 침략군을 격파하고, 한반도에 평화와 질서를 확립하고 돌아오라. 그리고 이길 때까지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 까지 싸워라!”고 말했다.

나는 에티오피아에 와서 처음으로 강뉴부대 할아버지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또 지금은 늙어 못 싸우지만 만약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자신의 아들을 보내겠다는 대화를 듣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현재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이지만 결코 그들의 희생과 고마움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춘천에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기념관이 있다고 들었다. 태권도 수련생들이 체험 교육으로 꼭 한 번 방문했으면 한다.

#에티오피아 태권도 현실과 고민을 공유하며 반성
에티오피아에 파견되어 바로 태권도 세미나를 하고 훈련을 시키며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치 못했다. 현실을 글로 표현하자면 ‘그냥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솔직한 마음으로 대한민국 정부파견 태권도 사범으로 세계태권도본부 국기원에서 파견되어 내 나름 다 차려진 밥상에 그냥 숟가락만 얹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편하게 태권도 보급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적어도 아프리카대륙이나 첫 파견되는 신규 사범들과 고민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해보면 현실은 전혀 다르다. 현지 문화원과 대사관에 파견되는 사범들은 그나마 좀 괜찮은 편이고, 정부파견사범이 되기 전 파견국가에서 먼저 활동하면서 자리를 잡고 정부파견 사범으로 온 사람들도 활동하는데 그나마 괜찮은 편이다.

에티오피아에 파견되어 현지 사범들과 함께 고민하고 웃어주고 슬픔을 나누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현지 사범들도 나에게 ‘얼마나 에티오피아에 있다가 가실 거예요?’라고 물었고, 내가 ‘왜 그런 질문을 하냐’고 다시 물었을 때는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세계태권도평화봉사단(TPC)처럼 1년이나 2년 정도 있다가 갈 것이라면 그냥 재미있게 에티오피아의 좋은 추억만 담고 돌아가 대한민국에서 에티오피아 태권도 가족들을 위해서 도와줄 방법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짧은 시간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태권도의 고민을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현지 사범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정년 퇴임을 하고 싶다고 농담처럼 한 이야기가 그들에게 일파만파처럼 퍼졌다. 그렇게 그들이 품고 있는 에티오피아의 태권도 역사와 고민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들의 에티오피아 태권도 역사와 지금까지 해결할 수 없었던 고민을 듣고는 이제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가 있었다.

에티오피아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을 훈련시키고, 세계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하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에티오피아에서 태권도 영웅으로 남겠다던 나의 꿈은 겸손하지 못했다. 현지 사범들을 존경하고 나 자신을 낮춰야 한다는 마음의 반성을 참 많이 해야 했다.

지금은 그들과 함께 맨 바닥에서 태권도를 수련하지만, 나는 태권도화를 싣는 혜택이 있고, 그들은 낡고 허름한 도복을 입고 있지만, 나는 그들이 부러워하는 브랜드 도복을 입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에티오피아에서 혜택 받고 있는 태권도인이다.

에티오피아는 80여 개의 부족국가로 부족끼리의 언어도 다르다. 그래서 80여 개가 넘는 언어가 있다. 현지인들끼리도 언어적 소통이 안 되어서 바디랭귀지 또는 단어, 단어로 이야기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 80여 개의 부족국가를 하나의 언어로, 하나의 동작으로 하나의 규칙으로 공통으로 하는 것이 ‘태권도’이다. 이것이 태권도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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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 김사범님!
    한햇동안 애 많이 쓰셨네.
    다가오는 새해와 더불어 더욱 건승하시기 바라며 열정과 땀으로 일군 에티오피아 태권도
    장족의 발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2. 에티오피아 김도진 사범님의 열정과 태권도를 향한 사랑이 느껴 지는 좋은 글입니다.
    누구나 할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세상에 하나뿐인 나를 알리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김도진 사범님의 삶에 응원을 보냅니다. 김도진 사범님의 용기에 응원을 보냅니다.
    항상 건강 조심 하세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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