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태권도 국기 제정에 힘쓴 이동섭 국회의원(오른쪽)이 북 콘서트를 하고 있다.

2018년 3월 30일 태권도가 우리나라 국기(國技)로 지정됐다. 이날 국회 제358회 제1차 본회의에서 ‘대한민국의 국기는 태권도로 한다’는 내용이 담긴 <태권도 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태권도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통과됐다.

태권도는 그동안 관습적으로 우리나라 국기로 인식됐지만 법률로 제정되지 않아 법적인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과 보전 및 육성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태권도 국기 지정을 주도한 이동섭 의원은 “300명 국회의원을 찾아 태권도의 현안과 범정부 차원의 보호·육성 정책이 절실함을 설명하며 공동발의에 참여하도록 설득했다”면서 “태권도가 국기로 지정돼 중국의 태권도 동북공정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되었고 올림픽 정식종목 유지에도 청신호가 켜지게 됐다”며 기뻐했다

그로부터 2년이 됐다. 태권도가 어떤 과정을 거쳐 국기가 됐고, 어떤 사람들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는지 국기 태권도 지정을 둘러싼 앞뒤 상황과 아직까지 잘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를 연대기(年代記)로 살펴보자.

971년 3월 21일 박정희 대통령이 쓴 ‘국기 태권도’ 휘호

# 박정희 대통령 국기 태권도’ 친필 휘호

1971년 3월 20일, 박정희 대통령이 한글로 ‘국기 태권도’를 써서 김운용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에게 줬다. 박정희 대통령은 왜 직접 붓글씨로 ‘국기 태권도’를 썼을까? 이에 대해 김운용 회장은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당시 그는 청와대 경호실 차장이었다.

“1971년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에 취임한 후 태권도를 국기화(國技化) 하는 것이 나의 첫 번째 임무였다. 그리고 태권도를 세계화하고 국위선양의 기수, 호국의 기수로 만드는 것이 비전이었다. 그런데 태권도는 국기도 아니었고, 씨름과 축구가 서로 국기하고 했다. 당시 태권도는 여러 모로 약했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께 말씀드려 ‘국기 태권도’ 친필 휘호를 받아냈다.”

김운용 회장은 대통령이 써준 ‘국기 태권도’를 실무진에게 지시해 복사를 하게 한 후 국내외 태권도 단체와 도장 등에 배포했다. 이것이 확산되면서 태권도인 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태권도=국기’라는 인식이 심어지게 됐다.

1984년 태권도와 씨름 간의 국기 논쟁을 보도한 기사 내용

# 1980년대 태권도씨름 간의 국기 논쟁

하지만 태권도가 법률로 국기 지정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시비와 논란은 계속됐다.

1984년 가을, 태권도와 씨름 간에 ‘국기 논쟁’이 확산됐다. 논란의 발단은 대한씨름협회 홍보지 월간 『씨름』에 실린 작가 곽 모씨의 ‘씨름 예찬론’이었다. 그는 ‘국기론’이라는 재목의 글에서 “전통 민속경기인 씨름이 마땅히 국기가 되어야 하며, 태권도가 국기로 자처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문제 제기에 대한태권도협회는 발끈하고 나섰다. 전통과 경기인 등록숫자, 국제적 위상 등으로 우리나라가 이미 태권도 종주국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씨름이 국기라고 하는 것은 터무니가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대한씨름협회에 정식으로 항의하면서 “비록 씨름인이 아닌 한 작자의 자유스런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글이 협회 기관지에 실리게 된 배경을 밝히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이에 대해 대한씨름협회는 평소 씨름을 좋아했던 한 사람의 개인적인 견해라며 대수롭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대한씨름협회의 한 임원은 “씨름의 전통성과 순수한 우리의 것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지 태권도를 의식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태권도인들의 반론을 『씨름』 잡지에 게재하겠다고 해명했다.

이 같은 논쟁은 1980년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아마 야구와 축구에 이어 씨름이 인기 프로스포츠로 각광을 받으면서 씨름계는 국민들 사이에 ‘씨름=국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 태권도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의 후광

1994년 9월 4일은 태권도계의 경사스러운 날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03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85대0 만장일치로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기 때문이다.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한국어는 올림픽 공식 언어인 영어, 불어, 일본어에 이어 네 번째로 올림픽 언어의 반열에 올랐고, ‘유사종목은 올림픽 정식종목이 될 수 없다’는 IOC 규정에 따라 일본의 가라테, 중국의 우슈 등 다른 격투기 종목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태권도인들의 자긍심이 높아졌고, 일반 대중들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스포츠는 태권도라는 긍정적인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IOC 총회에서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날을 기리기 위해 2006년부터 9월 4일을 ‘태권도의 날’로 지정했다.

# “태권도는 문화 브랜드” 정부 지원 활발

1990년대 후반부터 태권도 문화·산업 육성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태권도는 단순히 무예·스포츠이기 전에 우리나라는 대표하는 문화 상징물이자 국격(國格)을 높이는 브랜드의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1996년 김치, 불고기, 한글과 함께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10대 상징물로 태권도가 선정된 이후 정부는 태권도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 브랜드로 육성하기 위한 중장기 발전 계획을 수립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문화의 힘으로 세계를 제패한 것은 태권도가 최초”라고 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2008년 9월, 문화체육관광부는 ‘태권도 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태권도진흥법) 시행에 따라 태권도 진흥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2013년까지 5년간 3185억 원이 연차적으로 투자한다는 이 계획은 태권도 문화산업과 관광 브랜드화도 포함되어 태권도 문화산업을 촉진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2015년 9월에는 ‘태권도비전2020위원회’를 구성하고, △태권도의 문화문화 정체성 강화 △K-스타일과 융합한 태권도 콘텐츠 개발 △태권도원의 신(新) 한류 허브화 △태권도 산업화 촉진 및 태권도 관광산업 활성화 등을 추진했다.

# 고교생 85% ‘태권도=국기’로 인식

국민들은 우리나라의 국기(國技)가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2007년 9월, <태권도신문>은 이 같은 궁금증을 알아보기 위해 남녀 고교생 200명을 대상으로 ‘운동 종목 중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기(國技)는 무엇인가’라는 설문조사를 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시간·공간적 제약으로 전국에 있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설문조사를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 우리나라의 중앙에 위치한 대전의 만년고 학생 200명을 대상으로 삼았다.

설문조사 대상으로 고교생들을 선택한 이유는 한창 공부하는 학생들로서, 우리나라 국민들의 정서와 인식을 보편적으로 대변하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같은 조사대상 설정기준을 세워 고교생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태권도가 우리나라의 국기라고 응답한 학생은 170명, 택견은 20명, 씨름은 7명, 축구는 3명으로 나타났다. <도표 참조>
설문조사 결과에서 나타났듯이 태권도인들 뿐만 아니라 대다수 일반 국민들은 태권도가 우리나라의 국기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물론 태권도가 ‘국기’라고 법적으로 인정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 국민들의 마음에는 ‘태권도=국기’라는 인식이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이 확인됐다.

하지만 태권도는 법률로 국기 지정이 되지 않아 논쟁의 소지를 말끔히 털어내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 태권도 국기 지정 위한 최재춘 총장의 노력

태권도가 국기로 지정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합심했다. 그 중에서 최재춘 대한태권도협회 사무총장의 노력과 공로도 인정돼야 한다. 그는 언제, 어떤 계기로 태권도 국기 지정에 앞장서게 됐을까? 후일담을 보자.

“어느 날 후배를 만났더니 태권도가 법률로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기 태권도’라고 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당연히 태권도가 국기라고 생각해 왔으니까요. 그래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태권도가 국기로서 법적인 지위를 얻도록 미력하나마 나서게 됐습니다.”

최재춘 총장은 2012년 1월, ‘국기 태권도 국가상징 지정’ 추진을 위한 한국의 유산 발굴·조사사업을 시작했다. 이어 ‘국기 태권도 국가상징 지정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국기원과 세계태권도연맹, 대한태권도협회, 시도태권도협회를 잇따라 방문해 협조를 요청했다. 아울러 한국지식재산관리심사위원회가 국기태권도국가상징추진위원회(위원장 최재춘)의 등록을 승인하도록 힘썼다.

이 과정에서 그는 태권도계의 무관심과 홀대로 아픔을 겪기도 했기만 이에 굴하지 않고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김운용 국기원 초대 원장을 찾아가 자신의 의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구한 데 이어 2014년 국기원과 태권도진흥재단을 방문해 국기 태권도 입법 제정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국기 태권도 제정을 위한 홍보와 서명운동이 탄력을 받았다. 당시 그는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이 써준 ‘국기 태권도’라는 휘호만 있었지 태권도를 국기로 상징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전무한 상태”라며 “태권도인들은 물론 국민들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전개해 국기 태권도 입법을 추진할 것”이라며 기뻐했다. 하지만 국기 태권도 입법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017년 11월 국회 본청 태권도 수련장(다목적실) 국회의원태권도연맹 소속 의원들 첫 수련을 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회의원태권도연맹 창설은 태권도를 국기로 지정하기 위한 일환이었다.

# 태권도 국기 지정 주역, 이동섭 의원의 집념

국기 태권도 지정을 위한 움직임이 큰 진척이 없던 2017년 9월, 희소식이 들렸다. 이동섭 의원 주도로 ‘국회의원태권도연맹’이 창립을 모색한 것이다. 이 단체는 국회 소속 법인으로 태권도의 저변 확대와 올림픽 정식종목 유지를 위해 여야 국회의원 71명이 소속 정당과 이념을 넘어서 태권도 진흥과 세계화 및 태권도 육성·지원 정책을 마련하는데 창립 취지가 있었다.

국기 태권도 지정에 강한 집념을 보인 이 의원은 최 총장에게 국회의원태권도연맹 수석부회장을 제안하고, 국기 태권도 지정을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이 의원은 “태권도는 세계 1억 명이 수련하는 한류의 원조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만 무관심하고 있다. 태권도를 반드시 국기로 지정해 태권도 모국의 지위를 우뚝 세우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이 의원은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상임위원회 회의가 열릴 때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태권도를 국기로 지정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고, 대정부 질의에서도 태권도 발전을 위한 3대 과제를 제안하면서 태권도를 국기로 지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2018년 3월 5일 태권도를 국기로 지정하는 내용의 태권도 진흥법 개정안을 국회 의안과에 직접 제출하고 3월 19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거쳐 3월 21일 문화체육관광법안 심사소위원회에 상정, 심사, 의결(원안 가결)했다.

이윽고 3월 30일 국회 제358회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 293명(300명 중 7명 공석) 중 재석 175명, 찬성 169명, 반대 1명, 기권 5명으로 원안 의결했다. 여야 국회의원 225명이 공동발의를 하고 25일 만에 국회 본회의에서 96.57%를 찬성으로 가결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 의원은 ‘태권도 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을 제안하는 이유에 대해 ▲태권도는 우리 민족 고유 무도로써 국민들에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기(國技)스포츠로 자리매김함 ▲태권도는 세계적으로도 사랑받는 스포츠로 자리매김한지 오래임 ▲태권도가 가지는 의미와 역할이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태극기는 국기로 「대한민국 국기법」의 의해 제작·게양·관리 사항이 규정되어 있는 반면 태권도는 그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있지 않음 ▲국기에 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태권도를 우리나라와 민족문화를 상징하는 상징물로서 국민에게는 국가의 존엄과 자긍심을 심어주고, 다른 나라에는 우리나라 무도를 알리는 수단으로 지정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2018년 7월, 오스트리아를 출발해 모터사이클로 실크로드를 거쳐 서울에 도착한 노베르트 모쉬-강유송 박사 ‘태권도 부부’가 국기 태권도 법제화를 축하하기 위해 이동섭 국회의원(왼쪽)을 예방했다.

이 의원은 그해 4월 중순 국회의사당 잔디광장에서 펼쳐진 ‘태권도 평화의 함성’ 행사에서 태권도가 국기로 지정된 과정과 의미를 설명하면서 “중국의 태권도 동북공정과 일본 가라테와의 올림픽 종목 경쟁 등 우리 태권도의 위상을 위협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 행사를 통해 태권도의 국기 위상을 공고히 하고 세계적으로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 태권도 국기 지정 그 후

지난해 3월 29일 태권도가 국기로 지정된 후 1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고 태권도 활성화 전략을 모색하는 자리가 국회에서 열렸다. 이날 포럼은 태권도 국기 지정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안용규 한국체육대학교 총장의 ‘국기 지정 후 태권도 활성화 방안’ 기조 강연 △김성은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유산과장의 ‘정부의 국기 태권도 육성정책 방안’ 발표 △김지숙 한국여성태권도연맹 회장의 ‘국기 태권도를 위한 도장 활성화 방안’이 발표된 후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됐다.

그로부터 또 다시 1년이 지났다. 태권도 국기 지정 2주년을 맞아 태권도 단체도 그 의미를 되새기며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대한태권도협회는 태권도가 어떤 과정을 거쳐 국기로 지정됐고, 정부와 태권도계가 추진해야 할 태권도 진흥정책을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교육용’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국기원은 3월 30일 기념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우선 태권도 국기 지정에 공동 발의한 224명 의원들의 명단이 새겨진 기념돌 제막식을 갖고, 국기원 입구에 철골구조물을 설치해 태권도 국기 지정과 관련된 사진과 자료를 전시할 계획이다.

[알림] 서성원 기자가 쓴 이 글은 대한태권도협회가 발간하는 ‘태권도’ 잡지 2020년 3-4월호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대한태권도협회 승낙을 받아 전문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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