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3월 창설한 국제태권도연맹이 현판식을 하고 있다.

*ITF 본부, 5평 석탄창고 사용 – 해외사범 파견 놓고 대한태권도협회와 분규
*최홍희, 1967년 품세 제정에 대해 “동작 자체가 엉망이고 술어도 없다” 비판 

1966년 1월,  1년 만에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직에서 물러난 최홍희는 그 해 3월 자신과 가까운 군(軍) 출신 정치인들과 지인들을 규합해 ‘국제태권도연맹(ITF)’을 창설했다.

최홍희는 당시 실력가였던 김종필을 ITF 명예총재로 추대하고 자신이 총재를 맡았다. 당시 대한태권도협회 실세였던 이종우는 ITF 창설에 대해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직에서 불미스럽게 퇴진한 후) 서울 한남동 최홍희씨 집에 찾아가 ‘권위와 돈, 명예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자 그는 명예를 선택했다. 당시 나는 최홍희씨가 하도 안 되어 보여서 국내에서 골치 아프게 활동할 것이 아니라 태권도 국제조직을 만들어보라고 한 것인데, 그것이 결국 국제태권도연맹을 만들어 준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최홍희의 주장은 이와 다르다. 언젠가는 태권도 관련 국제기구를 만들 생각이었는데,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직을 사퇴함으로써 그 계획이 앞당겨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 ITF는 온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이뤄진 것이라며 “이상백 IOC위원으로부터 올림픽에 관한 책 2권을 빌려 혼자 ITF 규약을 만들었고, ITF 깃발과 유단자 배지도 스스로 도안했다”고 말했다.

최홍희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보자. <최홍희(1988). 태권도와 나. 도서출판 다움.>

“내 집에서 법률의 권위자인 김완용 장군과 대한태권도협회 간사들로 구성된 발기인 대회를 가지고 규약 통과와 임원 구성을 완료했다. 나는 대한태권도협회 후임 회장에 노병직 송무관 관장을 내정하고, 1966년 3월 22일 조선호텔 비즈룸에서 내외 귀빈 다수가 참석한 가운데 9개국 협회로 구성된 국제태권도연맹을 창설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상 처음 갖게 된 국제기구의 본부였다. 내가 국제태권도연맹을 창설한 목적은 태권도를 온 천하에 뻗치자는데 있었다.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내가 연구한 기술을 외국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국제사범을 길러야 했다.”

최홍희는 ITF를 창설한 후 역사상 최초로 태권도 국제기구 본부가 생겼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응당 정부의 대우를 받을 줄 알았지만  대한체육회가 자리 잡은 건물은 고사하고 석탄창고로 쓰던 5평도 안 되는 곳에 사무실을 마련해야 했다.

이런 실상에 대해 최홍희는 자신이 저술한 책(태권도와 나)에서 “역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띤 우리 연맹이건만 불행히도 우리나라 정권이 박정희 손아귀에 있다 보니 출범 첫날부터 재정적으로 곤란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의 처지가 너무나 한심스러워) 이상희 부총재를 매일 같이 들볶았더니 그는 마지못해 빈약한 소파와 책상 두 개를 기증해 왔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연맹의 틀을 하나씩 잡아나가야 했으니 한차교나 김종찬 사범은 물론 행정을 보는 사람들의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이런 궁핍한 여건 속에서 최홍희는 그의 말대로 “태권도를 온 천하에 뻗치자”는 꿈을 이루기 위해 외국 사람들에게 태권도를  지도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임시국제사범양성소>를 설치했다. 당시 국제사범양성소를 수료한 사람은 조희일·박정태·조수세 등이었다.

이처럼 국제사범 양성에 남다른 의지를 보인 최홍희의 행동은 대한태권도협회와의 분쟁으로 치달았다. 해외 사범 파견과 단증 발급 주도권을 놓고 두 단체가 분규에 휩싸인 것이다. 최홍희는 ‘길을 닦아 놓으니 문둥이가 지나 간다’는 속담을 인용하며 대한태권도협회를 싸잡아 비난했다. 특히 “중앙정보부의 끄나풀처럼 된 그들은 국내 협회의 주도권을 잡고 정통파 태권도인들을 배척할 뿐만 아니라 내게 까지 대항하려 드는 것”이라며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이러한 반목은 대한권도협회가 1967년 태권도 품세제정위원회를 만들고 이종우가 주도적으로 각 관의 대표자들과 품세(1987년 품새로 개칭)를 만들자 불만을 나타냈다.

최홍희는 당시 대한체육회 강당에서 열린 품새 제정 심의 회의에 나타나 동작 자체도 엉망이고 동작에 대한 명칭이나 술어조차 없다고 지적하면서 “형(품세)의 이름이 먼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형의 주제를 미리 정해놓고 그것을 동작으로 상징해 놓아야 한다. 또 누가 만들었는지 명시되어  있지 않다. 작자가 있어야 그 형이 지니고 있는 정신과 동작의 뜻을 물을 수 있고 권위도 서게 된다”고 했다. 이 말에서 자신이 만든 ‘틀(창헌류)’에 대한 자부심과 권위가 어느 정도였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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