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아래 글은 서성원 기자가 2016년 출간한 『태권도 역사와 문화의 이해』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1961년 9월 창설된 대한태수도협회(大韓跆手道協會)의 현안 중 하나는 각 관(館) 별로 시행되고 있는 ‘승단심사’를 통합하는 것이었다.

1962년 11월 국민회당에서 열린 ‘제1회 전국승단심사대회’에서 채명신 회장은 심사 통합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다음은 대회사 주요 내용.

“태수도는 그동안 각 유파별로 자파(自派)만을 위한 발전을 꾀하고 서로 고집과 편견 등으로 통합을 못 보았으나 5.16 군사혁명 이후 구악(舊惡)을 일신하고 단결과 호양(互讓)의 무도인 본분의 자태로 돌아와 통합을 이루었습니다. 과거 자파 도장에서 실력이 있든 없든 임의로 단을 부여했지만 협회 명칭 아래 공정하게 심사해서 실력 있는 공인단(公認段)을 주게 되어 경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제1회 전국승단 심사대회’ 식순은 당시 시대상을 반영해 ▷개회 ▷국민의례 ▷혁명 공약 ▷개회사 ▷대회장 인사 ▷심사에 대한 주의 ▷심사 ▷강평 ▷단증수여 ▷폐회사 ▷만세 삼창 ▷폐회 순으로 진행됐다.

제1회 승단심사 대회와 관련된 자료를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홍정표 원로는 1990년대 후반 “승단심사는 형(型), 대련(對鍊), 논문(3단 이상)이었다. 대련은 호구를 착용하고 시합을 하는 형태였다. 초단 응심자는 평안오단형(平安五段型), 철마초단형(鐵馬初段型), 내보진초단형(內步進初段型), 자원형(慈院型), 화랑형(花郞型) 등이었다”고 말했다.

1962년 대한태수도협회 초단증서발급장부

당시 승단심사 대회장은 채명신 회장이었고, 심사위원은 이남석·이종우·엄운규·박철희·이영섭·남태희 이사, 심판위원은 홍정표·김순배·김수진·김선구·이병로·배영기·고재천·이교윤·백준기 이사 등 25명이었다.

심사종목은 형(型)·시합(對鍊)·논문(3단 이상)이었다. 채명신 회장의 후일담.
“당시에는 단증을 남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유단자가 얼마나 되는지 다 파악이 안 될 정도였다.‘우리 관(館)에 유단자가 얼마다’하는 식으로 세 과시를 하기 위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형(품새)도 비슷한 게 많았다. 조금만 바꿔서 이것이 우리 형이다, 하는 식으로. 그래서는 태권도의 권위가 서지 않겠다고 생각해서 각 계파 대표자를 소집해 협회를 통해 단증이 나가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각 계파의 형을 통합 정리하도록 했습니다.”

당시 심사 자료를 보면, 대련 심판은 주심 1명과 부심 4명, 배심원 2명으로 구성했다. 주심은 호각으로 승부의 판정과 시합의 주도권을 담당했다. 부심은 시합장 사각에 앉아 채점하고 청·홍기로 승부의 판정을 표시했다. 배심원은 본부석에서 주심과 부심의 판정을 시정했다. 경기장은 사각 팔미(八米=8미터)로 정했다. 경기시간은 1회 3분이었다.

승단 응심자는 자신이 응심하는 단의 형(型) 중 2종을 선택했다. 2단 지정형은 발한형태(拔寒型大)·철기이단형(鐵騎貳段型)·내보진이단형(內步進貳段型)·기마이단형(騏馬貳段型)·충무형(忠武型)이었고, 3단 지정형은 십수형(十手型)·발새형(拔塞型)·연비형(燕飛型)·단권형(短拳型)·노패형(鷺牌型)·계백형(階伯型)·을지형(乙支型), 4단 지정형은 철기삼단형(鐵騎三段型)·내보진삼단형(內步進三段型)·기마삼단형(騎馬三段型)·자은형(慈恩型)·진수형(鎭手型)·암학형(岩鶴型)·진동형

(鎭東型)·삼일형(三一型)·장권형(長拳型), 5단 지정형은 공상군형(公相君型)·관공형(觀空型)·오십사보형(五十四步型)·십삼형(十三型)·반월형(半月型)·팔기권형(八騎拳型)이었다.

1962년 대한태수도협회 채명신 회장(사진 원안)이 협회 임원들과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당시 형(型)은 가라테 기술체계를 답습한 것이다. 다만 최홍희 장군이 창안해 오도관에서 통용되었던 창헌류의 계백형, 충무형이 포함된 것이 이채롭다. 이것은 그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풀이할 수 있다. 홍정표 원로는 창헌류에 대해 “역사적 위인이나 용맹한 동물에서 단명(段名)을 따왔는데, 한때 이승만 대통령에게 아부할 양으로 운암형도 만들었다”고 말했다.

3단 이상 응심자는 논문(필기)을 써야 했다. 제1회 승단심사 논문 제목은 ‘각 유파형 통일에 대한 발전과 그 방법’. 논문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대한태수도협회가 얼마나 관 별로 시행되는 형 통일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는지 알 수 있다. 논문심사는 시간이 지나면서 유명무실해졌다.

 

Print Friendly, PDF & Email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