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진 사범이 에티오피아 어린이 수련생들과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맨땅에서, 흙집에서 수련하고 있는 학생들도 많고, 비싼 도복이 아니라 그냥 하얀 천에 태극기를 찍어 만든 로컬 도복에도 마냥 즐거워하고 행복해 하는 태권도 수련생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에티오피아가 대한민국보다 더 태권도 본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예를 배우고, 몸과 정신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 어떤 환경에서라도 수련을 하는 수련생들, 이런 에티오피아 태권도인들에게 난 훗날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고 이들이 김도진 사범은 ‘때론 친구 같은, 때론 가족 같은 우리의 사범님이었다’고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2019년 5월 30일자, ‘에티오피아 태권도 역사를 탐구하는 까닭’이라는 제목으로 <태권박스 미디어>에 글을 게재했다.

나는 한국에서 아주 머나먼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라는 나라까지 어떻게 태권도가 들어오게 되었는지 정말 궁금했고, 어떻게 보급이 되었는지도 알고 싶었다.

어느 정도의 퍼즐이 완성되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내가 연로한 현지 사범님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하고 녹음하고 사진과 문서를 복사하면서 “무엇이든 남겨보자”고 다짐했다. 그들의 기억과 추억을 돌아보면서 나의 에티오피아의 태권도 역사 퍼즐은 맞춰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 체계가 잡혀진 에티오피아의 태권도 역사를 현지 사범들에게 설명하니 젊은 사범들의 반발이 정말 많았다. 그들이 현재 실세라고 여기는 사범(에티오피아의 태권도 모든 분야에 장기집권, 독식)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 불만인 듯 보였고, 또 작심하고 그 실세를 부각이라도 시키듯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하나 하나 그들이 반박하지 못하도록 내가 찾아낸 퍼즐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설명했고, 내가 이야기한 역사에 잘못된 것이 있다면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 달라고 부탁했다.

여기에서 ‘증거’란 그 당시에 찍은 사진과 문서, 또는 1세대 사범님의 인터뷰 음성, 또는 살아있다면 내가 직접 찾아가겠다고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 모두가 에티오피아의 태권도 역사 퍼즐을 함께 맞춰 나가자고 제안했다.

벽에 걸려 있는 박수철 사범 활동 모습

코로나가 뭔지도 모르던 작년, 어느 지방 도장을 방문 했을 때, 한국인 사범님 사진을 액자에 담아 허름한 낡은 흙벽에 걸어 둔 것을 보았다. 그 현지 사범님은 그 액자 속에 있는 분이 자신의 사범님이라며 자랑하며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하는 말투로 ‘수출 박, 수출 박’이라며 되뇌어 내가 꼭 그 사범님의 소식을 전해주겠다 약속했다.

그 이후에도 많은 사범님들이 ‘박수출 사범님’의 이름을 이야기했지만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 그 분이 언제 오셨고, 어떻게 이 머나먼 땅까지 태권도를 보급하게 되었는지 궁금했지만, 나는 그 분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 분 성함이 ‘박수출’이 아닌 ‘박수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때서야 그분이 어떻게 에티오피아에 오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1990년대 에티오피아에서 활동한 박수철 사범(뒷줄 왼쪽에서 세번째)과 박경식 사범(네번째).

【태권도가 어떻게 에티오피아에서 시작됐고, 전국으로 보급됐는지에 에티오피아 최초의 태권도 수련자 스네히워트(Sinehiwot) 사범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그의 관점으로 작성했다.】

에티오피아 태권도의 역사는 1983년 에티오피아 체육부 장관이자 IOC 위원이었던 예드네카츄 테세마(Mr.Yednekachew Tessema)가 한국 정부와 에티오피아 정부 간의 협정을 서명한 후 시작되었다. 합의에 따라 한국 정부는 에티오피아 최초로 태권도 사범을 파견했다.

파견된 한국인 사범이 훈련 용품을 가져오면서 YMCA가 훈련 장소가 되었다. 최초의 훈련생들은 공군, 육군, 공수부대, 해군(스네히워트 소속), 공무원, 국가 안보에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에티오피아에서 태권도를 보급하기 위한 훈련을 받았다.

파견된 사범은 9개월 동안 에티오피아에 머물렀다. 당시 4명이 에티오피아 최초로 승단심사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나, 블랙 벨트를 받은 사람은 나(스네히워트) 밖에 없었다. 그 당시에는 태권도 훈련을 군인들 외에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 우리는 숲속에서 몰래 훈련을 하였다.

1990년에 'Derg정권(맹기투스 공산주의)‘이 몰락하면서 무술연맹(ITF, WTF, 쿵푸, 가라데, 유도 등 모든 무술이 합쳐진 하나의 연맹)을 설립하고 공개적으로 훈련을 시작했다. 1991년에 에티오피아 월드 태권도 연맹(WTF)이 무술 연맹에서 따로 독립하였고, 뒤이어 우슈, 가라데 등도 무술 연맹에서 분리되어 독립했다.

한국에서 파견된 사범이 귀국하면서 1993년에 에티오피아에 4개의 태권도장이 생겼다. 그 당시 수련자들은 대부분 경찰 특수 부대 소속이었고, 1985년부터 ITF를 하다가 나중에 박노원(국제특공무술총재) 사범에게 태권도(WTF)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그 다음 박수철(특전공수부대소속) 사범도 에티오피아 태권도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에티오피아는 공산주의로 인하여 북한 태권도(ITF)가 장악했었고 민주주의를 맞이하면서 에티오피아 북한 태권도(ITF) 사범들을 전략적으로 3개월 동안 연수를 시키고 대한민국의 태권도(WTF)로 전향 시키는 업무를 담당했다.

이때 국방부, 국기원, 대한체육회 협동으로 10명도 안 되던 검은 띠 유단자를 100명 넘게 만들었다. 그는 그때 에티오피아 사범들이 2단과 3단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앞으로 올림픽 연대 프로그램(Olympic solidarity program)을 통해 4단으로 올릴 수 있는 기회도 받았다.

마지막으로 내가(스네히워트) 오래 전에 에티오피아에서 태권도를 시작할 때는 군사부대에서 수련하는 사람들이었고, 수련자도 별로 없었지만, 지금은 많은 젊은이들이 수련하고 있다. 그것도 대한민국 정부와 국기원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박노원 사범이 에티오피아 수련생들과 웃고 있다.

현재 박노원 사범은 국제특공무술 총재님으로 한국에 있다. 아직도 에티오피아 제자들이 보고 싶어하며 꼭 한 번 에티오피아에 오셨으면 좋겠다고 나에게 기회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 그 때는 지금보다도 더 열악한 환경과 모든 것이 좋지 못했을 텐데 어떻게 지내셨는지, 그리고 어떻게 일을 하셨는지 그때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나도 만나고 싶다.

대한민국처럼 태권도 수련환경이 좋은 나라가 있을까? 안전을 고려해야 하고, 학생들 등·하교도 해줘야 하며, 주말체육과 놀이체육, 게다가 수련생과 학부모의 눈높이에 맞춘 대한민국 태권도장의 현실 등.

그런 것에 비해 에티오피아는 맨땅에서, 흙집에서 수련하고 있는 학생들도 많고, 비싼 도복이 아니라 그냥 하얀 천에 태극기를 찍어 만든 로컬 도복에도 마냥 즐거워하고 행복해 하는 태권도 수련생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에티오피아가 대한민국보다 더 태권도 본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예를 배우고, 몸과 정신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 어떤 환경에서라도 수련을 하는 수련생들, 이런 에티오피아 태권도인들에게 난 훗날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고 이들이 김도진 사범은 ‘때론 친구 같은, 때론 가족 같은 우리의 사범님이었다’고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kukkiwonkimdojin@naver.com / 카톡 kimdojin9446으로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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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OMMENTS

  1. 김도진 사범님^^ 사범님이 자랑스럽습니다. 저와 인연이 되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멋진 활동 지속적으로 기대하겠습니다^^

  2. 에티오피아의 태권도 역사도 꽤 깊네요. 그들의 역사를 알아가고, 제대로 된 역사를 그들에게 알려준다는 것… 되게 멋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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