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진 남창도장 사범이 경북 병산서원에서 품새를 하고 있다.

 

태권도 수련과 심사의 요체인 품새(품세 : 복수표준어)는 언제, 누가, 왜 만들었을까?

1960년대 하순까지 태권도계는 일본 가라테의 형(型, 카타)을 수련하고 심사종목으로 삼았다. 1962년 11월, 대한태수도협회가 국민회당에서 주최한 제1회 전국승단심사대회 심사 종목은 형(型), 대련(對鍊), 논문(3단 이상)이었다.

초단 응심자는 평안오단형(平安五段型), 철마초단형(鐵馬初段型), 내보진초단형(內步進初段型), 자원형(慈院型), 화랑형(花郞型) 등을 했다. 2단 지정형은 발한형태(拔寒型大)·철기이단형(鐵騎貳段型)·내보진이단형 (內步進貳段型)·기마이단형(騏馬貳段型)·충무형(忠武型)이었고, 3단 지정형은 십수형(十手型)·발새형(拔塞型)·연비형(燕飛型)·단권형(短拳型)·노패형(鷺牌型)·계백형(階伯型)·을지형(乙支型), 4단 지정형은 철기삼단형(鐵騎三段型)·내보진삼단형(內步進三段型)·기마삼단형(騎馬三段型)·자은형(慈恩型)·진수형(鎭手型)·암학형(岩鶴型)·진동형(鎭東型)·삼일형(三一型)·장권형(長拳型), 5단 지정형은 공상군형(公相君型)·관공형(觀空型)·오십사보형(五十四步型)·십삼형(十三型)·반월 형(半月型)·팔기권형(八騎拳型)이었다.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부끄럽게도 당시 태권도계는 가라테 수련·기술 체계를 답습했다. 최홍희가 창안한 창헌류(틀)는 군과 오도관 등에서 제한적으로 통용돼 민간 도장에서 폭넓게 수련하지 않았다.

art_1458887374
1960년대 태권도를 수련하고 있는 최홍희 국제태권도연맹 총재.

최홍희는 1965년 8월, 영문으로 된 『태권도교본』(4×6판·364쪽)을 펴냈다. 당시 그는 태권도의 기술연구를 비롯해 명칭과 용어를 제정하기까지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태권도를 가라테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키자고 역설했다.

1966년 최홍희가 저술한 『태권도지침』(광고출판사)에는 20개 형(型)을 태권도 고유의 것이라고 소개하고, 가라테의 소림류 및 소령류와 함께 자신의 아호(雅號)를 딴 창헌류를 기술했다. 창헌류는 동작의 수(數), 연무선에 역사적 인물들의 이름이나 호(號)를 따서 지칭했다.

그는 창헌류의 특징에 대해 “가볍고 무거운 동작, 그리고 빠르고 느린 동작을 혼합함으로써 몸이 가벼운 사람도 무거운 동작을 할 수 있는 반면 몸이 무거운 사람도 가벼운 동작을 할 수 있도록 하면서 족기(足技)를 광범위하게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의 평가는 이와 좀 다르다. 최홍희가 일본 유학시절 배운 가라테를 변형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970∼80년대 최홍희를 따르며 ITF 소속 사범으로 활동한 림원섭은 1998년 10월 태권도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최 총재의 회고록 『태권도와 나』라는 책 안에는 최 총재의 태권도 동작 사진이 15개 있다. 그 중 중복된 동작 사진은 5개가 있어 실상은 10개의 동작 사진이 있는데, 5개 동작은 태권도 동작이 아니다. 가라테 동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옆차기는 가라테 동작과 똑같다”고 비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대한태권도협회는 1967년부터 본격적으로 가라테 형을 탈피하기 위한 독자적인 품세(品勢) 제정에 들어갔다. 언제부터 무슨 계기로 ‘형’을 ‘품세’로 불렀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품세(品勢)는 이종우가 명명(命名)했고, 세(勢)는 기세, 형세라 하여 중국무술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태권도협회는 1968년 품세제정위원회를 구성해 팔괘와 유단자 품새를 만들었다. 품새제정위원회 위원장은 이종우(지도관)가 맡고, 곽근식(청도관)·이영섭(송무관·이교윤(한무관)·박해만(청도관)·김순배(창무관) 등이 참여했고, 1972년 태극 품새를 만들 때는 추가로 배영기(지도관)·한영태(무덕관)가 참여했다.

1966년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에서 물러나 국제태권도연맹(ITF)를 만든 최홍희는 대한태권도협회가 품세 제정형을 만들자 유쾌하지 않았다. 자신이 만든 창헌류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최홍희는 대한체육회 강당에서 열린 품세제정심의회의에서 동작과 자세가 엉망이고 그에 대한 명칭과 술어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형의 이름이 먼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형의 주제를 미리 정해놓고 그것을 동작으로 상징해 놓아야 한다. 또 누가 만들었는지 명시되어 있지 않다. 작자가 있어야만 그 형이 지니고 있는 정신과 동작의 뜻을 물을 수 있고 권위도 서게 된다”고 비판했다.

2016년 11월 초 서성원 기자가 청도관 사무실에서 박해만 원로를 만나 품세 제정을 취재하고 있다.

당시 품세제정위원으로 활동한 박해만은 이와 관련된 비화를 2016년 11월 초 기자에게 들려주었다. 흥미진진한 내용을 보자.

“1960년대 후반까지도 태권도계는 일본 가라테 형(型)을 수련하고 심사를 봤다. 각 관(館) 의 도장에선 주로 유급자 형인 태극과 평안을 많이 했다. 이 형의 특징은 연무선(품세선)이 ‘工(지을공)’이었다. 품세제정위원들에게 각자 품세를 만들어 오라고 했는데, 가라테 형을 배웠기 때문에 그것을 모방해 만들어 왔다. 품세선도 ‘공(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위원장인 이종우 관장은 가라테 형에 태극이 있어 태극이라고 할 수 없어 태극에 있는 팔괘를 따서 팔괘라고 했다. 머리가 참 좋았다. 그런데 품세 동작이 팔괘 품세선, 팔괘 뜻과 동작이 맞지 않았다. 기본동작을 품세선에 맞춰 공방(攻防)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박해만은 유급자용으로 만든 팔괘품세의 문제를 지적하며 “나는 제정위원 중 나이가 가장 어렸지만 5개를 만들어 그 중 2개가 채택됐다. 그것이 팔괘 3장과 5장이다. 팔괘 중 어려운 것은 고려, 태백 등 이름을 붙여 유단자 품세를 만들어 17개 품세를 제정했다. 1975년 내가 만든 팔괘 5장은 유급자(자띠)들이 했는데 구성이 어렵다고 해서 팔괘 8장이 됐다.”

당시 팔괘 4장은 5장으로 바뀌고, 5장은 8장, 6장은 4장, 7장은 6장, 8장은 7장으로 바뀌었다. 8장 품새선 ‘工’자는 ‘土’자로 바뀌었다. 팔괘품세는 팔괘의 철학적 의미가 결여되고 품세선과 동작의 흐름 등이 문제가 되어 결국은 폐기되었다.

m6571
1972년 대한태권도협회가 발행한 태권도교본 품세편. 이종우 원로가 엮었다.

1972년 대한태권도협회 기술심의회의는 용어제정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초ㆍ중ㆍ고등학교 교육과정에 들어갈 태극 1장부터 8장까지 유급자 품세를 만들어 교과서 편수자료로 내놓았다. 이에 대해 박해만은 “태극품세는 팔괘품세를 만들 때보다 신중을 기했다. 미리 품세선을 정하고, 좌우의 동작을 같게 하고 앞으로 나가는 것과 돌아오는 것을 같게 했다”며 “특히 방어부터 시작해 막고 지르는 동작을 조직있게 짰다”고 말했다.

이로써 품세는 유급자와 유단자 품세를 합쳐 25개로 늘어났다. 대한태권도협회는 1972년 12월 기술심의회 의장이었던 이종우의 주도로 최초의 태권도 공인 태권도교본(품세편)을 발간했다.

용어는 1987년 또 한 번 크게 바뀐다. 국기원은 1987년 2월 한글학회에서 한글학자 7명의 자문을 얻어 태권도 기본용어 중 일부를 우리말로 변경하고 3월 1일부터 사용했다. 그 때부터 ▴품세→품새 ▴연속차기→이어차기 ▴제비품 막기→비틀어 막기 ▴호신술→몸막기로 변경됐다. 품새의 ‘품’은 ‘모양새’, ‘새’는 ‘맵시’와 ‘꼴’을 의미한다. 품세를 품새로 바꾸자 이종우가 반발했다. 그는 “날아다니는 ‘새’도 아니고, 이게 뭐냐”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국립국어원은 ‘품새’를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았다. 표준어는 ‘품세’였다. 실정이 이렇다 보니 관공서와 전시회에서 일반인들이 ‘품세’라고 표기하면, “품새가 맞다”며 항의하는 태권도인들이 있었다. 또 ‘품세’로 되어 있는 국어사전을 ‘품새’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었다.

논란이 일자 국기원은 2009년 9월 『태권도 기술 용어집』을 발간하면서 논란이 끊이질 않았던 ‘품세’와 ‘품새’ 중에서 ‘품새’를 쓰기로 결정했다. 그 후 국립국어원이 뒤늦게 ‘품새’를 ‘품세’와 함께 표준어로 인정했다. 이는 태권도계에서 널리 사용하고 있는 세태를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강익필 사범이 유럽 세미나에서 품새를 가르치고 있다.

품세와 품새 논란은 2000년대에 들어서도 계속됐다. 이종우는 “모양새를 뜻하는 ‘새’는 생명감이 없고 고착된 형태를 나타낸다. 품세의 ‘세(勢)’에는 기품과 기세 등 형태적 변용과 생명력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며 ‘품새’를 ‘품세’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진방 용인대 태권도학과 교수도 2002년 자신이 쓴 논문에서 “품새보다는 품세가 옳다. 품새라고 하면 왠지 무술이 지닌 변용적 가치를 축소하는 것만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품새의 ‘품(品)’과 ‘새’는 모두 ‘모양새’를 의미해 ‘역전(驛前) 앞’과 같다. 하지만 품세의 ‘품’(品)은 영어로 풀이하면 ‘Form’(자세)을 의미하고, ‘세(勢)’는 ‘Movemant'(움직임) ‘Power’(힘) ‘Flow’(흐름) 등을 폭넓게 뜻한다”고 강조했다.

‘세’(勢)는 ‘새’에 비해 몸의 형태, 즉 자세와 기세, 힘, 흐름, 움직임 등이 보태져 마치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들게 한다. 생동감이 있고 역동적이다. 하지만 품새는 그렇지 않다. ‘품’과 ‘새’는 특별한 차이가 없이 모양새, 됨됨이, 자태, 맵시 등을 의미해 뜻이 겹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강한 생명력도 느낄 수 없어 온실 속의 고양이를 연상케 한다.

1987년 한글화 바람에 따라 한글학자의 자문을 얻어 변경한 ‘품새’는 태권도의 무술성, 즉 무술의 특질과 변용을 간과한 채 ‘순우리말’로 태권도 용어를 바꾸려고 했던 패착이 아닐까 싶다.

한편 아시아태권도연맹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 지원을 받아 수련용·경기용 새 품새를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수련용은 국기원과 충분한 협의해야 하는 과제를 남겨 놓고 있다.

Print Friendly, PDF & Email

1 COMMENT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