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생들이 스펀지 방망이를 활용해 기본 발차기를 배우고 있다.

[알림] 이 내용은 대한태권도협회가 발간하는 태권도 잡지 2020년 1-2월호에 게재된 도장탐방 기사로, 협회 허락을 받아  전문을 싣습니다. 취재와 글은 서성원 기자가 했습니다.

2019년 12월 19일 오후, 서울 송파구 대한태권도협회에서 출발해 경기도 이천과 충북 충주를 거쳐 경북 칠곡군 약목면에 들어서자 사방이 어딘지 분간할 수 없었다. 초행길의 낯선 동네는 칠흑 같은 어둠에 둘러싸여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어디로 가야 하나? 같은 길을 여러 번 돌고 돌아 약목면 관호리 모퉁이의 야산 아래에 큰 바위처럼 웅크리고 있는 바람소리태권도장(관장 오무환)을 찾을 수 있었다. 시계를 보니 밤 8시. 저 멀리서 어둠을 뚫고 도장 안에서 우렁찬 기합과 수련 소리가 흘러 나왔다.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청소년이 도복차림으로 수련장에서 나왔다.

“이곳이 바람소리태권도장인가요?”
“예. 맞습니다.”
“고등학생인가요?”
“학생이 아니라 사범입니다.”
알고 보니 이현석 사범이었다.
“밤 8시가 넘었는데, 평소 몇 시까지 수련하죠?”
“밤 11시까지 합니다.”

바람소리태권도장의 첫 인상은 강렬했다. 도장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자 수련 열기가 가득했다. 수련 분위기가 진지하고 열정이 넘쳤지만 수련생들의 표정은 밝았다. 태권도를 하는 것이 마냥 즐거워서 경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무환 관장과 눈인사를 나눌 겨를도 없이 조용히 도장 모퉁이에 앉아 취재 장비를 꺼냈다.

# 오무환 관장의 태권도 인생
경북 칠곡에서 태어난 오무환 관장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태권도를 배웠다. 그 후 개인적인 이유로 잠시 태권도를 그만뒀다가 선배의 권유로 다시 태권도장의 문을 두드렸다. 오 관장은 “스승님을 믿고 줄곧 태권도를 수련했다. 그 분이 도장을 개관해서 자연스럽게 사범 생활을 시작했다.”면서 “학창시절부터 꿈은 오로지 사범생활을 충실히 하고 도장을 개관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오 관장은 이 도장에서 태권도를 배우고 사범 생활을 시작했다. 10년 정도 묵묵히 사범의 본분을 다하고 있을 때 스승이었던 도장의 관장이 직접 도장을 경영해 보라고 권유해 망설이지 않고 도장을 인수했다. 그 때 나이가 혈기왕성한 서른 살. 10년 가까이 사범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동안 쌓은 경험과 나만의 스타일로 태권도 교육과 도장 경영을 두루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다소 섣부른 기개였을지는 몰라도 바람소리태권도장은 오 관장의 강한 의지로 개관했다.

# 바람소리 태권도장의 인문학적 특징
경북 칠곡군 약목면 관호리에 있는 바람소리태권도장은 전형적인 ‘시골 태권도장’이다. 도장 앞에는 논밭과 낙동강 물줄기가 유유히 흐르고, 도장 뒤에는 나지막한 야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따라서 도심의 여느 도장과는 전경이 많이 다르다. 도장 앞마당에는 근력을 키우는 운동기구와 야외 식탁이 놓여 있다. 아마도 날씨가 좋은 날엔 이곳에서 수련생들과 고기를 구워먹으며 결속과 친화를 다졌으리라.

오 관장은 “2012년 도장을 인수하고 몇 개월 동안 경영적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조급해 하고 않고 수련비를 받으면 제자들과 함께 삼겹살을 구워 먹으로 스킨십을 하고, 야산에서 나물을 캐서 학부모들에게 나눠 주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도장 성장의 토대가 됐다”고 회고한다. 그 당시를 생각해 요즘도 가끔 학부모님들과 소통하고 친분을 쌓기 위해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다.

바람소리태권도장은 전국에 둘도 없는 이색적인 명칭이다. 왜 이렇게 명명(命名)했을까? 이에 대해 오 관장은 “태권도를 수련할 때 도복에서 나오는 소리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 같다는 생각에 들어 ‘바람소리’를 착안했다.”고 했다.

평소 오 관장은 수련생들에게 “앞서있다고 자만하지 말고, 뒤쳐져 있다고 실망하지 말자”고 강조한다. 이 말에 대해 이현석 사범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고,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도록 수련생들의 자존감을 높여준다.”고 풀이한다. 이 사범은 덧붙여 “이러한 도장의 분위기와 환경이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해 수련생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밝은 표정으로 태권도를 한다. 예의범절도 중요하게 여겨서 유품자와 유단자, 선배와 후배 관계가 건강하게 형성되어 있다.”고 자랑한다.

승급심사는 보통 한 달 반에 한 번씩 한다. 3개월에 두 번 하는 셈이다. 예전에는 2개월에 한 번씩 했는데, 승급을 하지 못한 수련생들이 2개월을 기다리는 것이 너무 길어 기간을 단축했다. 지금은 학부모들을 초청하지 않고 승급에 불합격한 수련생들을 따로 모아서 재심사를 한다. 물론 심사 내용은 학부모들과 공유한다.

띠를 활용해 스텝과 발차기를 하고 있다.

# 청소년 수련생들이 많은 비결
국내 태권도장의 대다수 수련생은 10세 전후의 초등학생들이다. 약 90%가 어린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바람소리태권도장은 이 같은 통계와 거리가 멀다. 초등부 수련생이 전체 수련생의 70% 정도이고, 나머지 30%는 중·고등학생들과 대학생 및 성인들이다. 여기에 여자 청소년들이 많아 도장 분위기가 유쾌하고 밝은 편이다. 청소년들이 많은 까닭에 대해 오 관장은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 수련생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 도장에 와서 태권도를 수련합니다. 그런 수련생들이 태권도를 하면서 재미와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몇 년 동안 도장에 오지 않을 겁니다. 저희 도장은 태권도를 지도하되 재미와 즐거움이 느끼도록 하다 보니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꾸준히 수련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 관장의 말을 부연 설명하면, 태권도 동작과 기술을 배우면서 얼마든지 수련생들에게 재미와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재미와 흥미를 만끽하면서 꾸준히 수련하는 것이 장기 수련생, 즉 청소년 수련생들이 많은 비결이라는 셈이다.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탁월함은 꾸준함을 이기지 못한다’는 문구인데요. 수련생들이 꾸준히 태권도를 수련하기 위해서는 태권도 범위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 알찬 수련 프로그램이 많아야 합니다.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평소 생각하고 연구하며 수련생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저는 태권도 기본 발차기와 겨루기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물론 품새도 하지만 청소년들은 겨루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다른 도장보다는 겨루기 지도법을 나름대로 특화했습니다.”

그렇다면 수련생들의 생각은 어떨까.
김민주 수련생은 “고등학생들은 주로 겨루기를 중점으로 배우는데, 힘들고 지루한 겨루기보다는 재미있게 즐기면서 발차기와 스텝을 배운다,”고 했고, 박나영 수련생은 “관장님과 사범님께서 항상 밝기 때문에 수련하는 저희들도 항상 밝게 웃으면서 태권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 놀이형 프로그램 지양, 겨루기 특성화로 승부
바람소리 태권도장은 ‘기본’을 중요하게 여긴다. 단순히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심신 단련과 바른 마음가짐을 강조한다. 이현석 사범은 “수련을 시작하기 전 도복을 바르게 입고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태권도 수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명상을 한다.”고 말한다. 발차기를 하고 겨루기를 하기 전에 바른 자세와 마음가짐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특징은 놀이와 게임을 접목한 이른바 ‘놀이형 프로그램’을 하지 않는다. 그 까닭을 오 관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주로 수련생들이 선의 경쟁을 통한 태권도 교육을 합니다. 다른 도장에 없는 수련 프로그램이 아니라 다른 도장에서 많이 하는 프로그램이 없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요즘 다른 도장에서 많이 하는 태권체조나 줄넘기, 쌍절곤, 음악 품새 등 게임과 놀이 위주의 프로그램을 하지 않습니다. 태권도 본연의 프로그램을 하는 것도 벅찹니다.”

그렇다고 해서 재미와 흥미를 멀리하는 것은 아니다. 태권도 동작과 기술을 재미있게 배우면서 실력을 끌어올리는 지도법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오 관장은 재미와 실력 향상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지도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저희 도장은 엘리트 태권도 선수들을 키우는 곳이 아닙니다. 수련생들이 태권도를 좋아하고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도록 동기부여를 해줍니다. 그러기 위해선 태권도가 재미있어야 하고 그 재미 속에서 실력이 향상된다면 분명히 수련생들은 태권도에 푹 빠지고 오랫동안 태권도장에 있을 겁니다.”

바람소리태권도장은 겨루기를 특성화했다. 이것이 도장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기본동작과 발차기와 주먹지르기, 겨루기, 스텝을 기본 기술에 초점을 맞춰 지도하고 있다. 중·고등부와 성인부는 기본적인 스텝을 이용한 판 미트 발차기와 회전 종치기, 빠른 스텝으로 스택스(STEX) 빨리 쌓고 회수하기, 띠 뺏기 등 경쟁을 통해 실전 겨루기에서 보람과 성취감을 느낀다.

오 관장은 이 같은 겨루기 지도법의 효과에 대해 “수련생들이 재미있어 하고, 집중력이 많이 향상되며, 선의 경쟁으로 숨어있는 실력까지 표현하게 된다.”면서 “엘리트 선수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활체육 태권도 대회에 참가해 자신의 기량을 발휘해 성취감을 느끼면서 장기 수련생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바람소리태권도장은 초등부 유품자 수련생들에게는 기본 발차기와 스넵 발차기, 골반 발차기, 스펀지를 활용한 스넵 발차기를 중점적으로 가르치고, 중등부 이상의 수련생들에게는 회전 발

딛기를 강조한다. 오 관장은 초등부 수련생들에게 특별히 바라는 것이 있다.
“초등부 수련생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힘과 스피드가 아니라 기본자세입니다. 그래서 스펀지 방망이를 활용해서 스넵 발차기와 골반 발차기를 주로 하는데요. 바른 자세를 만들기 위해 다리를 최대한 오래 들고 버티는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발 모양과 자세가 바르지 못하면 훗날 어린 수련생들이 성장을 했을 때 힘과 스피드가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기본동작을 잘하는 것이 실력 향상의 기본입니다.”

•이현석 사범(오른쪽)과 박나영김민주·김민규 수련생

# 사범과 수련생에게 묻다
2019년 12월 19일 밤 10시. 수련이 끝난 후 사범과 수련생들을 만나 태권도를 하게 된 배경과 바람소리태권도장의 특징에 대해 질문을 했다.

■ 이현석 사범(남·28세) : “초등학교 시절 태권도장 근처에서 축구를 하다가 도장 전등을 깨뜨렸는데, 도장 관장님께 꾸짖지 않고 오히려 다치지 않았는지 걱정해 줘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제자를 먼저 헤아리며 실수를 감싸줄 수 있는 따뜻한 사범이 되고 싶어 태권도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꿈은 제자들에게 인정받는 자랑스러운 태권도 사범이 되고 싶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제가 관장님을 보고 꿈을 키웠듯이 저를 보며 또 다른 지도자가 생겨날 수 있도록 따뜻한 마음으로 태권도를 지도하고 싶습니다.

■ 김민규 수련생(남·24세) : “검도도장을 다니다가 누나를 따라서 바람소리태권도장을 다닌 후 15년이 됐습니다. 도장에서 주로 겨루기와 낙법, 호신술 등을 다양하게 배워 심신이 단련됩니다. 요즘에는 도구를 활용한 수련을 자주 하는데, 그 중에서도 ‘스택스’라는 컵을 활용하여 겨루기 딛기를 하는데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도장 분위기는 항상 화기애애합니다. 즐겁게 때론 엄격하게 하기도 합니다. 현재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태권도 동아리에서 훈련부장을 맡고 있는데, 바람소리태권도장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운동을 하다 보니 전국대학태권도동아리대회에서 남자부 종합우승을 했습니다.”

■ 박나영 수련생(여·18세) :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 따라서 태권도를 했어요. 도장에서는 주로 여러 가지 도구를 활용해 겨루기를 배우고 있는데, 아무런 목표 없이 수련하기보다는 선의 경쟁을 하면서 하면 이기려고 하는 의지가 강해져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생깁니다. 평소 관장님과 사범님께서 항상 밝은 표정이어서 밝게 웃으면서 태권도를 수련할 수 있어서 참 좋아요. 앞으로 꿈은 지금처럼 꾸준히 태권도를 해서 태권도 지도를 위한 응용 능력을 키우고 싶습니다.”

■ 김민주 수련생(여·19세) : “초등학생 때 친구들이 도복에 띠를 매고 있는 모습이 매우 멋져 보여서 태권도를 하며 꼭 검은 띠를 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장에서 고등학생들은 주로 겨루기를 중점적으로 배우는데, 힘들고 지루한 것이 아니라 재미있고 즐길 수 있게 발차기와 스텝을 배워서 흥미롭습니다. 요즘에는 허리에 띠를 묶어 상대방과 경쟁을 하면서 스텝을 익히는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아요. 아무래도 겨루기를 하다 보니 스텝과 발차기에 관심이 있는데, 재미있게 계속 하고 싶습니다. 집보다는 도장이 더 편안하고 재미있어요. 관장님과 사범님께서 스스럼없이 저희에게 장난도 걸어 주시면서도 진지하게 가르쳐주시는 모습이 정말 멋있어요. 앞으로 대학에 진학하는데, 시간이 되는 날마다 도장에 와서 꾸준히 태권도를 수련할 거예요.”

서성원 기자가 오무환 관장과 바람소리 태권도장 앞마당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오무환 관장의 꿈
2019년 12월, 오 관장은 대한태권도협회가 주최한 제13회 전국태권도장 경영 및 지도법 경진대회에 참가했다. 발표 주제는 ‘재미와 실력을 한 번에! 경쟁을 통한 겨루기 지도법’. 그는 현장 투표에서 1위를 하는 등 금상을 수상했다.

“오래 전부터 도장경진대회에 나가는 것이 꿈이었어요. 그 때를 기다리다가 주위에서 참가하라고 권유해서 서류심사와 예선을 거쳐 본선에 나가 발표를 했습니다. 제가 발표한 내용을 보고 도장 지도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경진대회를 통해 느낀 것은 아직 태권도는 살아 있다는 것이었죠.”

기회가 주어진다고 대한태권도협회 강사로 활동하고 싶다는 그는 “70세까지 도복을 입고 수련생, 제자들과 땀 흘리는 진정한 사범이 되겠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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