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을 제압하는 강렬한 눈빛과 경쾌한 발놀림, 그리고 그의 상징인 쌍절곤과 ‘아뵤~’라는 괴성으로 세계를 열광시켰던 무술영화의 지존, 이소룡(李小龍·영문명 Bruce Lee).

이소룡은 33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명성은 여전하다. 사망 후 그를 새롭게 평가하는 움직임이 방송계를 중심으로 일고 있다.

이소룡은 1940년 11월 2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미국 텔레비전의 단역 배우로 일하다가 1971년 홍콩 골든하비스터사(社)가 제작한 <당산대형(唐山大兄)>의 주인공으로 발탁되며 일약 액션영화의 스타가 되었다.

그 후 이소룡은 춤을 추듯 구사하는 쌍절곤, 괴성을 지르며 상대의 급소를 공격하는 동물적 민첩성, 결정타를 날린 뒤 보여주는 분노와 슬픔이 교차된 묘한 표정 등으로 전설적 인물이 되었다.

*이소룡 무술의 바탕은 영춘권=어린 시절 이소룡은 내공과 기공을 위주로 하는 태극권을 배운 후 성장하면서 근육의 힘과 육체적 기량을 근본으로 하는 당랑권, 공력권, 영춘권 등으로 무술의 폭을 확대해갔다.

이소룡 무술의 바탕은 영춘권이다. 절권도의 기술 중 손기술의 대부분은 영춘권에서 나왔고, 발차기도 영춘권의 기본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따라서 태권도 발차기 기술을 배우기 전에 발차기를 전혀 하지 못했다는 것은 근거가 없다. 다만 손기술과 몸동작에 비해 상대적으로 발기술이 약했던 중국무술을 익혀왔던 이소룡이 당대 최고의 발기술을 선보이던 태권도에 심취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소룡의 주특기 중 하나였던 옆차기는 태권도를 배운 후 더욱 위력적이고 세련되게 발전했다는 게 무술계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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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LA해변에서 이준구 사범(오른쪽)이 이소룡에게 태권도 발차기를 시연하고 있다.

*이준구, 이소룡에게 발차기 전수=이소룡이 다른 발차기 중에서 유독 옆차기를 잘한 것에 대해 태권도계 주위에서는 “청도관은 다른 관에 비해 옆차기를 잘했다. 이준구는 청도관 출신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소룡에게 옆차기를 전수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준구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원래 쿵푸에는 옆차기가 없다. 내가 이소룡에게 옆차기를 비롯해 돌려차기, 뒤돌려차기 기술을 가르쳐줬다”고 말했다.

이소룡이 이준구를 처음 만난 것은 1964년 LA 롱비치에서 열린 세계가라테선수권대회에서였다. 이 대회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소룡은 TV와 영화에 출연하며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이소룡은 이준구보다 9살 아래였지만, 두 사람은 무술 동료로서 서로 존중하고 아꼈다. 1968년 LA해변을 배경으로 발차기 수련을 하는 흑백사진은 두 사람의 돈독한 관계를 증명한다.

*이소룡이 창안한 절권도의 특징=절권도는 정해진 커리큐럼과 형(型)이 없다. 애매모호함을 배격하고 실용을 추구했던 실전 무술이다. 이소룡은 다른 유파의 무술을 스스럼 없이 배우며 짧은 거리에서, 빠른 발놀림을 하되 몸의 중심을 흔들지 않으면서 연타를 잘 구사했다. 다시 말해 절권도는 형식을 초월해 펜싱과 각종 무술의 장점을 뽑아 만든 테크닉 위주의 실전 무술이다.

최창봉 동아일보 기자는 “당산대형부터 정무문, 맹룡과강, 용쟁호투를 거쳐 유작인 사망유희까지 그는 늘 맨몸으로 거대 조직의 음모와 억압에 맞서는 인간을 연기했다. 1973년 32세로 요절할 때까지 그는 동양인의 자존심을 지키고 동양의 무예와 미를 적극 알린 선구자였다. 수많은 영화와 음악이 그의 옛 모습을 추앙하는 것은 그의 우직한 자존심과 용기가 여전히 숱한 팬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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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1. 쿵푸 이소룡, 태권도 이준구 만남이네요
    옆차기와 뛰어옆차기 최고입니다
    쿵푸와 다른 발차기 태권도였네요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2. 이소룡 출생지는 미국이 아니고 홍콩이며 홍콩에서 아역배우로 영화에 출연한후 미국으로 부모와 유년시절 이민자 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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