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세계품새선수권대회에서 김지수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지수(경희대 품새선수, 2018국가대표 품새선수)

지난 18일 폐막한 제11회 세계품새선수권대회를 끝으로 2018년의 모든 대회를 마무리했다. 며칠 전만 해도 세계대회라는 큰 무대에서 경기를 펼쳤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아주 달콤하면서도 쓰린 꿈을 꾼 것만 같다.

이 대회를 위해 구례에서 2주 동안 합숙 훈련을 했다.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모두가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이라는 목표 하나만 보고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훈련 중 가장 어려웠던 점은 다른 학교에 품새 스타일도 다른 친구와 복식전 출전을 위해 호흡을 맞추는 것이었던 것 같다. 둘 다 복식전 출전 경험도 적어서 일단은 무작정 맞춰보고, 무작정 영상을 찍어서 수없이 봤다.

그러다 보니 맞춰야 할 포인트가 보이기 시작했고, 주변의 피드백을 통해 얼추 모양이 나오기 시작했다. 또 다른 어려웠던 점은 계속 복식전만 맞추자니 개인전의 흐름을 잊을까 불안하고, 개인전을 연습하자니 아직 많이 부족한 복식전이 마음에 걸려 불안했다. 두 종목에 출전할 수 있는 것은 굉장한 영광이었지만, 준비 기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2주 간의 합숙 훈련을 마치고 이틀 뒤 대만으로 출발했다. 여행 외의 목적으로 해외를 나가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기분이 묘하고 설렜다. 대만에 도착 후 바로 다음 날 경기장으로 향했다. 경기장 안에 들어서는 순간 긴장감이 온몸을 스쳐 갔다. 국내 대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긴장감이 돌았다. 세계 여러 나라의 선수들이 한 곳에 모여 품새를 하고 있는 그 현장을 눈으로 직접 보고 나니 이제야 내가 세계대회를 뛰러 왔구나 하는 것이 현실로 느껴졌다.

이틀간 경기장에서 적응 훈련을 할 때는 컨디션이 최상이었다. 합숙 훈련을 하는 동안 자잘한 부상이 많아 경기에 지장이 있을까 그것이 가장 걱정이었는데, 긴장감의 효과인지 당장 경기를 뛰고 싶을 정도로 컨디션이 좋았다.

첫째 날 경기가 시작되었고, 첫째 날에는 복식전 경기가 있었다. 전날에 느꼈던 최상의 컨디션보다는 조금 덜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첫 경기에 나도 모르게 긴장을 많이 했는지 평원 품새를 하던 중 목이 경직되어 시선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실수가 나왔다. 다행히 큰 감점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런 실수를 해본 적이 처음인지라 그 순간의 놀람이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그래서 경기가 끝난 후 음악을 들으며 한참 동안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그렇게 다시 마음을 다잡고 무난히 결승까지 진출했을 때 큰 변수가 일어났다. 두 번째 품새인 평원에서 뒤집힌 점수가 전광판에 뜬 것이다. 전광판을 한참 동안 멍하니 쳐다보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던 중 전광판에 ’청 승‘ 화면이 떴고, 정말 다리에 힘이 풀리는 줄 알았다. 아직도 그때의 감정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나와 파트너 둘 다 세계대회가 처음이었기에 우승이 확정되고 태극기를 들고 코트를 크게 한 바퀴 돌라는 코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여 심판석 앞을 지나 경기장을 크게 돌아 웃음을 자아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막상 그렇게 복식전을 우승하고 나니 후련하기보다는 개인전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가장 큰 걱정은 미리 지정된 첫 경기와 결승전의 품새가 딱히 나에게 유리하지 않은 품새였다는 점이었다. 솔직히 너무 불안했다. 하지만 나 자신을 믿고, 더 집중적으로 연습을 했다.

30세 이하 복식 결승에서 이재원-김지수 선수가 경기를 하고 있다.

셋째 날이 되고, 아침 첫 경기부터 개인전이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경기를 뛰어왔지만, 언제나 첫 경기는 긴장이 되어 몸이 가볍지 않은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처음 붙었던 상대인 덴마크 선수도 실력이 만만치가 않았다. 청 선수였던 덴마크 선수의 품새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렇게 안일한 정신상태로는 정말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확 스치고 지나갔다. 한 경기 한 경기 올라갈수록 긴장이 풀려야 하는데, 이상하게 긴장이 잘 풀리지 않았다. 그렇게 우여곡절 결승전까지 올라갔다. 정말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마지막 순간이었다. 언제 다시 밟아볼지 모르는 세계선수권 마지막 경기의 코트 안에 들어섰다. 자신 있었던 첫 번째 품새는 예상대로 앞서고 있었고, 마지막 품새인 금강만을 앞두고 있었다.

국내 대회에서 올해 생긴 트라우마가 있었다. 꼭 준결승, 결승에 올라왔을 때 금강 품새만 나오면 실수를 범했다. 하지만 이것을 트라우마로 낙인찍고 싶지 않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 나를 믿기로 했다. 그리고 꼭 이 무대에서 그것을 당당히 깨트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매트 위에서 결정적으로 한 가지를 잊어버렸다. 어쩌면 거의 다 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풀렸는지도 모른다. 불안할수록 더 차분하게 잡고 갔어야 했는데, 불안하다 보니 판단력이 흐려지고 빨리 끝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그리고 결국 금강 품새를 연습할 때 늘 머릿속으로 되새겼던 루틴을 잊어버렸고, 결정적인 실수를 범했다. 반면 상대인 멕시코 선수는 아주 차분하게 자신의 경기를 풀어나갔고, 한 치의 실수도 없었다. 내가 청 선수여서 먼저 경기를 했고, 멕시코 선수가 코트 위로 올라갔을 때 나는 이제 물러설 곳이 없었기에 제발 실수를 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 멕시코 선수의 경기를 볼수록 내가 졌다는 것이 더 명확해질 뿐이었다. 기량이 더 뛰어나고 말고의 문제를 떠나, 경기 운영에서 이미 내가 졌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충분히 긴장되는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상대 선수는 정말 차분하게 경기를 풀어나갔다. 내가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결과는 당연히 뒤집혔다. 예상했지만, 그래도 받아들이려니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멀리까지 경기를 보러 와주신 부모님이 눈앞에 보이고, 뒤를 돌아보니니 말을 잃으신 코치님의 얼굴이 보였다. 허탈감과 동시에 죄송스러움이 몰려왔다.

그리고 시상대에 올랐을 때 감정이 조금 격해졌다. 아쉬움, 속상함, 나에 대한 실망감 등의 오만 생각이 들었다. 시상대를 내려올 때 시상대 뒤쪽 관중석에서 박수를 치고 계시는 부모님을 보고 시상대에서 내려와 큰절을 올렸다. 멋있게 우승하고 큰절을 올렸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조금 후련했다. 결과가 어떻든 내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묵묵한 지지와 응원이었기 때문에 꼭 그 감사함을 이 자리에서 표하고 싶었다.

시상대에서 내려오자 이제 정말 다 끝났다는 생각에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던 것 같다. 개인전에서 은메달을 딴 것은 속상하지 않았다. 결승까지 올라가 나에게 주어진 모든 기회를 잃지 않고 경기를 마음껏 한 것은 정말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에 집중력을 잃은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다. 쉽게 오지 않는 기회였고,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이 기회를 한순간의 실수로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혔다. 분명 나의 실수로 인한 것인데 계속해서 자신의 탓으로 돌리시고 미안하다고 하시는 코치님께 너무 죄송하고 더 마음이 아팠다. 코치님께서는 꼭 나에게 금메달을 두 개 만들어주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마음이 아프셨던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는 꼭 약속을 지키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것이 어떤 방법으로 지켜지든, 그 약속의 가장 중요 포인트는 내가 더 열심히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열심히 해야 할 이유와 목적이 생겼기 때문에 그 여운을 금방 잊고 일어설 수 있을 것 같다. 쉽게 오지 않는 기회였기에 아쉬움과 실망감이 컸지만, 그 아쉬움과 실망감으로 인해 그 어려운 기회를 다시 한번 잡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겼고, 더 노력할 것이다.

세계대회라는 큰 무대에서 메달을 딴 것만으로도 정말 영광스럽지만, 그 이후의 노력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메달의 영광은 거기서 끝일 것이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내가 가진 메달의 빛이 오래 남을 수 있도록 스스로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에게 더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황홀했던 2018 세계품새선수권을 무사히 마칠 수 있어 영광이었고, 함께 동고동락했던 한국대표선수단으로부터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가는 것 같다. 멀리까지 와서 응원해주신 부모님, 관장님, 전민우 감독님께 정말 무한히 감사드리고, 멀리서도 응원해줬던 모든 분께 감사함을 전하며 모든 추억을 가슴 속에 고이 간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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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 짧은 시간 안에 다른 학교와 같이 호흡을 맞추어 큰 무대에 선다는 것은 운동하는 선수에게 큰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모든 것을 다 맞추고 개인전을 준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태극기를 달고 뛰는 것에도 부담이 많았을 것 같은데 그 점은 보안하고 무대에 선 것에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겨루기에도 단체전이 있듯이 품새에도 복식 경기는 같은 팀의 보안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대회에서 은메달은 결국은 쉬운 경기는 아니였을텐데 모든 부담을 가지고 뛰는 시합에 최선을 다해 하는 모습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성적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2. 세계대회라는 큰 대회에서 자신이 노력한 만큼의 경기결과가 나오는 것은 정말 잊지 못할 짜릿한 기분일것이다. 경기당일의 컨디션과 시합의 운 또한 있어야 좋은 결과를 얻을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국대회의 압박감보다 세계대회의 압박감과 부담감이 훨씬 컸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것도 컨트롤하는 것이 진정한 선수라고 생각된다. 자신이 조금의 실수로 인해 메달이 결정되는 대회이기에 자기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된다고 생각한다. 노력한 만큼 최선을 다한 만큼 좋은 결과가 있다. 앞으로도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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