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영 원로

김중영 창무관 4대 관장, 관련 자료 토대로 추정

“YMCA 권법부는 1946년 9월에 창설된 것이 아니다. 1946년 8월 난지도에서 모서수련을 했다는 명확한 자료(사진)가 있다. 역사는 거스를 수 없다.”

김중영 원로
김중영 원로

창무관(彰武館) 4대 관장인 김중영(75) 원로의 말이다. 그는 지난 6월 9일 창무관 사무실에서 “(1대 관장인) 윤병인 선생은 1941년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1943년부터 학교에서 권법을 가르친 것으로 추정된다”며 창무관 전신인 YMCA 권법부는 1945년 해방 전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김 원로는 “창무관의 뿌리는 YMCA 권법부로 보기 때문에 1대 관장은 이남석 관장이 아니라 윤병인 관장”이라며 “1948년 제3회 창무관 권법부 정기 심사대회가 열린 것을 보면, 1회 심사는 수련 및 심사과정을 봤을 때 1945년 해방 전에 했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

– 언제 누구에게 태권도를 배웠나?

“나는 1942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났다. 1953년 서울로 올라가 당시 중앙청 인근에 있던 창무관 중앙본관에서 태권도를 배웠다. 내 스승은 당시 창무관 중앙본관 사범으로 있던 김순배(창무관 3대 관장, 2015년 타계)였다.”

창무관 2
1946년 8월 서울 난지도에서 모서수련을 하고 있는 YMCA 권법부 윤병인 사범(왼쪽에서 앞줄 두 번째)와 김순배, 홍정표 수련생

– 김순배 관장은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어떤 기술과 동작을 어떻게 배웠나?

“김순배 스승님은 1930년생으로 경기도 양평 출신이다. 서울 한양중을 다니던 1946년 YMCA 권법부(창무관)에 입관해 윤병인 관장에게 중국 무술과 태권도를 배웠다. 김순배 관장은 키가 180Cm로 거구여서 다리가 길었다. 그래서 앞차기를 특히 잘했고, 옆차기와 뒤차기, 형도 잘하는 편이었다. 제자들을 가르칠 땐 몸소 동작과 기술을 보여주었다.”

– 좀 더 구체적으로 1950년대 중반 창무관 수련 내용과 환경을 설명하면?

“하루 3번 조간부(朝間部)-학생부-일반부로 나눠 수련을 했다. 수련생은 주로 중학생과 청년들이었는데 정확히 몇 명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보통 각 부별로 하루 2시간 태권도를 했는데, 그 순서는 기본동작을 먼저 하고 형과 대련을 했다. 막고 치고 넘기는 호신술도 했고, 창무관 입구에 격파 단련을 하기 위해 나무를 세워 놓고 짚으로 꼬아 만든 새끼줄을 동여맨 기구(권고대)를 손날과 주먹으로 치기도 했다.

일보대련은 무급부터 3급 빨간 띠까지 했고, 삼보대련은 6급 파란 띠까지 했다. 3개월에 한 번씩 승급심사를 했는데, 1년이 지나야 6급이 될 수 있었다. 대개 3년이 지나야 1단을 딸 정도로 엄격했다.

– 남들보다 잘했던 기술과 동작은 있었나. 함께 태권도를 수련했던 사람들은?

“특별히 잘하는 기술은 없었다. 김순배 관장에게 배운 앞차기와 옆차기, 돌려차기, 뒤차기는 제법 했다. 1960년대 중반 창무관 선수로 대회에 참가할 때 주로 이런 기술을 구사했는데, 경기하다가 이단 옆차기를 차고 바닥에 잘못 떨어져 어깨를 다친 뒤로는 특별한 기술을 발휘하지 못했다. 당시 창무관 출신으로 선수 생활을 함께 한 사람은 서영준, 심현덕 등이다. 모두 기본 발차기는 잘했다.

– 언제부터 무슨 동기로 제자들은 가르쳤나?

“1957년 창무관 중앙본과 사범(스승)이었던 김순배 스승이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인근에 창무관 서울본관을 차려서 따라 갔다. 당시 나는 3급 빨간 띠였는데, 그 곳에서 기거하면서 태권도를 배웠다. 국민학생부터 중학생, 고등학생, 청년 등 100명 정도 됐다.

어느 날 김순배 관장이 아침 6시부터 시작하는 조간부를 맡아 태권도를 가르쳐 보라고 해서 12명 정도 되는 무급과 하얀 띠들을 가르쳤다. 주로 신문팔이와 10대 중반들이 나에게 태권도를 배웠다.”

김 원로는 태권도와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청소년 시절부터 책 장사를 했다. 헌책을 사고 다시 팔아 수련비와 학비를 마련한 것이다. 책과의 인연은 그가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출판사를 개업하기에 이른다. 1966년 9월 9일 서울시문화체육과에서 직접 등록했다.

그는 “고교생 신분으로는 출판업을 할 수 없어서 형 명의로 개업했다. 연령도 안됐거니와 기혼자만 출판업 신고가 가능했다. 그래서 형 명의를 빌려 개업했다. 그것이 지금의 오성출판사”라고 했다.

오성출판사는 1980년대부터 국기원과 함께 태권도 교본을 만들기 시작했고, 최초의 영문판 태권도 교본을 발간했다. 당시 그는 국기원 편찬위원장을 맡아 선배 태권도인들과 함께 태권도 용어와 품새 등을 정립했다. 이 외에도 어린교본, 겨루기, 품새 등을 발간했고, 이를 토대로 한 고화질 DVD세트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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