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7일 ‘최홍희 탄생 100주년’을 맞아 <태권도와 삶 ; 최홍희 어떻게 볼 것인가?> 학술대회가 한국체육대학교 합동강의실에서 열렸다.

태권박스미디어(대표 구민관)와 한국체육대학교 태권도학과(학과장 장권)이 공동 주최하고, 태권박스미디어가 주관한 이날 학술대회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허건식 박사 주제발표 : 무예인물사로 본 최홍희
“세계 태권도를 이끈 두 분이 계십니다. 고인이 된 최홍희 전 국제태권도연맹 총재와 김운용 전 세계태권도연맹 총재가 있는 것이죠. 한 분(최홍희)은 태권도를 만드는 초기 과정에서 ‘태권도 창제(創製)’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면, 김운용 전 총재는 ‘올림픽 태권도’를 만드는 역할을 했단 말이죠. “태권도 70년 역사 속에서 특정 인물을 평가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지속적으로 연구를 해야 합니다. 그 속에서 최홍희라는 인물은 가장 기초적인 연구 영역에서 굉장히 중요한 기초를 깔고 있어요. 왜? (태권도) 시작점에 있으니까요. 최홍희 태권도 창제론·창시론 논쟁은 지속적 연구 필요합니다.”

◇한병철 박사 주제발표 : 최홍희 창시자 논란과 공과 재조명
“최홍희는 (1940년대 초 일본 유학시절) 가라테를 수련했고, 태권도를 연구·발전시켰습니다. “태권도 창명자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태권도 이름을 만드는데 최홍희 장군의 영향력이 지대했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최홍희 장군이 북한에 (ITF) 태권도를 전파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도 북한은 태권도를 하고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동구권에 태권도가 보급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최홍희의 공로는 무도 태권도를 연구·발전시켰다는 것입니다. “최홍희 장군은 태권도를 ‘정치 시녀’로 만들었죠. 갈등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해 태권도가 발전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태권도는 5대 관에서 시작됐지만 5대관이 동일하게 각 20%의 지분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최홍희 지분이 가장 큰 것이 맞지 않겠느냐, 즉 대주주라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최홍희 장군을 금기시하고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은 북한으로 갔다는 ‘레드 콤플렉스’ 때문입니다. 민족주의자 최홍희에 대한 객관적인 재평가 작업 필요합니다.”

[종합토론]

◇곽정현 토론자(가천대 태권도학과 교수)
“태권도가 오랜 시간 변화·발전한 무술이라고 생각하는데, ‘태권도 창시자’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은 어느 한 시기에 나타난 ‘창작 무술’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허건식 발제자
“저는 태권도 창제·창시가 맞다고 봐요. 창제·창시와 관련해서 100% 만들어야 창시와 창제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에요. 최홍희는 founde(창설자·설립자)입니다. 최홍희는 어떻게 보면 태권도 창안자일 수도 있고 창명자도 포함해서 창시자라고 보는 이유가 뭐냐면, 최홍희는 태권도 이념을 부여했어요.”

◇한병철 발제자
“현재 태권도는 가라테와 중국 북방무술이 적절히 섞여 있는 것 같고, 한국 토착화 과정에서 우리 몸짓이 들어갔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합니다. 분명히 가라테와 중국무술에 없는 발차기가 생겼습니다. 저는 태권도가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한국화한 걸로 봅니다.”

◇유승희 토론자(ITF-KOREA 사무총장)
“국제태권도연맹(ITF) 태권도가 북한 태권도라고 알고 있는 분 있나요? ITF 태권도는 북한 태권도가 아닙니다. 현재 ITF를 보급하는 과정에서 당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최홍희를 월북자라고 표현하는 것에도 반대합니다.”

◇박성진 토론자(인사이드태권도 기자)
“최홍희는 가노 지고로(유도 창시자)보다는 (오키나와테 당수도를 일본 공수도로 바꾸는데 큰 역할을 한 후나고시 키친(근대 가라테 아버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태권도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무술에 창시자가 있냐 없냐?라는 점에서 최홍희를 태권도 창시자로 놓는다는 것은 좀 어폐,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생각을 하는 것이고요. 태권도 제도권 주류에 계시는 교수가 섭외되어서 최홍희 과(過), 공(功)도 인정할 것이 있겠지만, 과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얘기해 줬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최홍희 과오는 태권도 정치화라고 했는데요. 태권도는 정치화를 통해서 세계화하고 발전했습니다.”

◇김지혁 토론자(광주대 스포츠과학부 교수)
“최홍희가 태권도 창시자라고 객관적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면 지금 태권도사로 정립되어있는 역사적 사료들은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대한태권도협회에서 인정(1961년 대한태수도협회를 前身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최홍희가 창시자로서 1959년 대한태권도협회를 창립한 사실에 기준해 보면 태권도 전통설 입장에서 태권도 역사를 1959년에 시작한 것으로 다시 봐야 하는지…최홍희를 태권도 창시자라고 했을 때 태권도 역사를 어떻게 재정립해야 할까요? (한병철 발제자가) 태권도 창시는 여러 명이 했고, 태권도에는 오키나와테와 동북팔극권이 섞여 있다고 제시했는데, 오키나와테와 동북팔극권이 섞여 있는 것이 태권도라면 과연 ‘창시’라는 표현이 맞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방청객 질의]

◇안재찬 송곡대 교수
“한병철 발제자가 최홍희는 태권도 창시자라고 해도 충분하다고 말씀하시면서…북한의 태권도와 남한의 태권도가 분명 기술체계와 수련체계가 확연히 다르다고 말씀을 하셨어요. 그렇다면 최홍희 총재가 태권도 창시자로 불려야 한다면 세계태권도연맹 안에서 이뤄지는 태권도를 창시했다면 인정할 수 있지만 지금 기술과 수련체계가 전혀 다른 세계태권도연맹 중심으로 수련을 하고 있는 남한 태권도에서 태권도 창시자는 약간 모순이 있지 않나요?”

◇곽정현 토론자(가천대 태권도학과 교수)
“태권도라는 이름을 갖게 되기까지, 태권도의 모습을 갖추는 상황에서 태권도가 태권도 그 자체로만 나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많은 무술이나 문화나 환경이 접목되어서 지금의 태권도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인간의 몸의 움직임부터 시작한 부분을 태권도 역사의 기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 움직임이 문화를 거쳐서 내려 오면서 사실주의에 입각해 가라테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느냐는 학설까지 접목을 해서 우리의 문화가 태권도에 녹여져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고 생각해요.”

◇진원용 사범
“국제태권도연맹 태권도는 물론이고 세계태권도연맹 태권도장에서도 수련생들에게 ‘태권도 정신’을 교육할 때 최홍희 총재께서 정립한 ‘태권도 5대 정신’을 대부분 도장이 교육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새로운 태권도 정신을 재정립해야 하는 필요성은 느끼고 있지만 아직 태권도 정신을 재정립하는 연구는 많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최홍희 총재가 정립해 놓은 5대 정신을 그대로 사용해도 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태권도 정신을 재정립해야 한다면 어떤 방향으로 해야 하는지요.

◇김지혁 토론자(광구재 스포츠과학부 교수)
“아직도 국제태권도연맹(ITF)에서도 태권도 5대 정신을 그대로 활용하고 계신지? 그렇게 본다면 세계태권도연맹(WT) 태권도는 그 때 받아들인 최홍희 장군의 태권도 5대 정신은 무도성이 굉장히 강했던 시기였고, 지금은 흔히 태권도를 무도 스포츠라고 하는 현실에서 태권도 정신을 새로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봐요.”

◇김용민 사범
“최홍희가 그렇게 원했던 태권도가 하나 됐을 때 우리가 통일이 된다…현재 시대상으로 어떻게 보고 계신지, 그리고 어떠한 방향으로 세계태권도연맹과 국제태권도연맹이 같이 가야 되는지…”

◇한병철 발제자
“(북한이 ITF 태권도를 지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북한에 태권도를 보급한) 최홍희에 대한 최홍희 과거와의 화해는 결국 남북 태권도의 화해를 가져올 것이고…상징적으로 최홍희 사면복권과 독립유공자 추서가 필요합니다.”

[기획·촬영 서성원-편집 정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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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최홍희 장군이 발간한 교본에는 각 관의 고수들을 모아 교본을 완성시켰다 지금까지 발간된 교본중에 완성도가 가장 뛰어나다고 볼수있다 1965년도에 벌써 영문판을 완성 시켰다 그 시대에 벌써 세계화에 뒤딤돌을 놓은것이다 토론자들 가운데 창헌류 팔괘 태극품세를 섭렵한 분들이 없는것이 아쉽다 최총재는 오도관의 류파의 총관장은 되지만 태권도의 창시자는 아니다 그러나 최총재는 분명 문무를 겸비한 무도인 이다 검도의 미야모토 무사시에 버금가는 [도]로써 세상을 정복 하고자 하는 큰심장 큰가슴 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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